▲ 이상우 (경원학원재단 상임이사)
[경인일보=]세종시를 '교육도시'로 만들자는 이야기 때문에 대학사회가 뒤숭숭하다. 이번 청문회 과정에서 나온 말을 모아 보면 세종시를 원안대로 하는 행정복합도시, 기초과학의 모음집인 과학비즈니스 벨트의 과학도시, 대학을 대거 집어넣는 교육도시, 무공해의 녹색성장 기업으로 구성하는 녹색도시, 송도와 같이 경제특구를 만들어 첨단기업을 유치하는 기업도시 등등, 그 종류가 많기도 많다. 어떤 도시를 만들든 상관없다.

그러나 교육도시만은 곤란하다. 교육도시라는 말은 그곳에 대학을 무더기로 유치하겠다는 발상인데, 그것은 대학사회의 지형을 인위적으로 파괴하겠다는 소리다.

어떤 형태의 도시든 양념으로 한두 개, 그것도 아주 작은 규모로 집어넣는다면 몰라도 거대 종합대학들을 여럿 포함시키겠다는 건 착각이다.

서울대는 공대는 물론 학과 하나도 가지 않겠다고 공식선언했으니까 논외로 하면, 현재 비공식으로 언론에 흘러다니는 대학은 고려대와 카이스트대 뿐이다.

사립대학의 사정을 한번 보자. 고려대는 아직 확인된 게 없어 뭐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천안부근 서창에 분교가 있는데, 같은 도내에 또 분교를 만들 수 있을까? 고려대는 캠퍼스든 분교든 땅도 건물도 공짜로 주지 않으면,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심산이다. 고려대 유치에 천문학적인 국비를 쓴다면, 그것은 특혜 중에 왕 특혜다. 그렇게 하면 사립대학들의 집단반발에 부닥칠 것이다. 수도권의 다른 대학들도 환경은 비슷하다고 본다.

연대는 송도에 정신이 팔려 있고, 성균관대와 한양대는 율전과 안산에 캠퍼스와 분교가 있다. 이들은 최고의 글로벌시스템을 추구하고 있어 밖에서 보는 것과 같이 그렇게 한가롭지 않다. 중앙대도 안성캠퍼스를 하남으로 옮길 계획이어서 딴 생각할 여유가 없다.

수도권에서 규모가 큰 건국대 경원대 국민대 단국대 이화여대 등 나머지 대학들은 세종시의 '세'자에도 관심 없는 것 같다. 광역시 대학도 사정은 마찬가지. 그곳에 잔뜩 돈을 들여 '캠퍼스'나 '분교'를 내봤자, 실익은 고사하고 자칫하면 심한 경영난에 빠질 우려가 아주 높기 때문이다. 경영난 우려의 저변에는 '입학생 만성 부족현상'이 자리하고 있다. 80년대 전국의 대학 수는 전문대를 포함 315개에, 수험생 수만도 90여만명에 달했다. 현재 대학 수는 그때보다 30여개가 늘어난 345개(전문대137개). 그런데, 수험생 수는 고작 57만여명이다.

이 같은 수험생 부족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군소도시로 갈수록 더욱 심화할 것이다. 광역시 대학뿐 아니라, 이미 수도권 대학에도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상당수의 지방 대학들이 매년 정원을 채우지 못해 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일부는 교직원 봉급도 제대로 못 주는 상황이다. 교수 연봉이 1천500만원인 곳도 있다면 믿겠는가. 교육과학기술부가 '대학선진화' 작업 일환으로 경영이 부실한 25개 대학을 선정, 폐교를 검토하고 있다. 매년 부실대학을 골라내 폐교시키거나 통폐합시키겠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학사회가 이 지경인데, 어디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더더욱 대규모 종합대학 설립은 현실에도 맞지 않고, 설사 설립한다 해도 성공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누가 이름도 없는 신생대학을 보고, 그 먼 세종시까지 가겠는가?

대안은 하나 뿐인 것 같다. 카이스트가 세종시 참여를 언급했으니까, 그 대학을 이전하는 게 안성맞춤이다. 같은 충남권이고 신입생 정원도 970명 정도라 딱 맞는다. 다만, 카이스트를 현재대로 놔두고, 또 '세종캠퍼스'나 '분교'를 만들자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카이스트 하나면 족하다는 얘기다.

사립대는 죽든 말든 방치하고 국립대에만 돈을 퍼부어서는 안 된다. 대학 하나 설립하는데 땅값에 건물신축, 교육기자재 비용까지 합치면 2조원도 훨씬 더 든다.

대학설립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그 비용을 연구능력이 뛰어난 사립대학에 지원할 경우, 국가산업 및 과학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공돈 쓰지 말라는 이야기다. 세종시를 교육도시로 만드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다. 강제하면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