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리없이 퍼져 어느새 인류를 압박하고 있는 신종 인플루엔자처럼 물질만능주의가 극대화되며 나타나는 인간 소외를 저자는 감염으로 치환한다. 또 소설은 다수 중심 민주주의의 씨줄 위에 거대 자본주의가 날실로 엮인 강력한 사회의 톱니바퀴 안에서 익명화된 인간관계의 위험성도 극명하게 들춰내고 있다.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사회에서 성공이란 자아 실현이 아닌 자기 자신을 상품가치로 물신화해 얼마나 많은 연봉을 받느냐로 판가름난지는 이미 오래다. 결혼이란 제도마저 돈과 성의 완벽한 물물교환으로 읽어내는 자본주의에서 개인의 소외와 고립은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여진다.
고정된 매트릭스 사회의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둬버린 인간 군상은 타인의 고통은 물론 나의 고통마저 어느새 타자화해 버리고 있음을 작가는 지적한다. 개에게 전기쇼크 후 음식을 주니 고통 속에서도 침을 흘렸다는 조건반사 실험처럼 작금의 샐러리맨들은 부품화되는 자신의 위치를 불평하면서도 어느새 월급날만 기다리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19~20세기가 혁명과 폭력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순응과 적응의 세기란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우리는 어느새 사회에 너무나 길들여져버린 건 아닐까 작가는 묻는다. 대중매체의 범람은 관음증과 불감증을 야기시키고 순정한 이상(理想)을 품으면 애어른이 되고 마는 세태 속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주어진 틀을 바꾸려 하기보다 그 안의 프로그램에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는 모습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실제가 아닌 허상의 쾌락을 좇는 사이퍼처럼 우리는 이런 사회구조를 묵인하고 있는 공모자이자 공공연한 파트너란 말이 독자의 심장을 파고든다.
이미 태어날때부터 자기의 사회적 위치가 낙인처럼 정해지는 사회는 죽은 채 태어나는 사산(死産)의 세계로 비유하는 걸 부정할 수 없는 작금의 현실이 무척이나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