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구(수원대 경상대학장·객원논설위원)
[경인일보=]"워싱턴의 지배계급들조차 이제는 규제가 수반되지 않는 자본시장의 자유화는 극히 위험할 수도 있다는데 동의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시프 스티글리츠의 '세계화와 그 불만'에 나오는 한 구절로 그의 걱정은 7년여 만에 글로벌 금융위기로 현실화되었다. 재작년 초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미국의 비우량주택담보대출 관련 투자손실문제는 점차 증폭되면서 월가를 초토화시키고 세계경제를 불황의 심연으로 밀어 넣었던 것이다. 진작에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일을 가래로도 못막는 엄청난 사태가 불거졌다.

금융위기 1년이 지난 지금 세계증시는 지난해 9월초 대비 87%수준으로 되살아나며 국제원자재가격이 꿈틀거리는 등 긍정적인 시그널들이 간취된다. 미국의 실업률 상승세가 둔화되고 독일의 산업생산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 현재까지는 우리나라의 성적표가 가장 양호하다. 세계경제에 서서히 희망의 빛이 간취되는 것이다. 국제공조체제가 큰 역할을 했다. 각국이 신속하게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초저금리로 적기에 공동 대응하는 등 일사불란한 협력을 한 탓이었다.

목하 세계는 금융위기의 수습대책강구로 고민 중이다. 이번에 개최된 G20정상회의의 주요의제중의 하나가 그것이었다. 세계가 당면한 과제는 첫째, 어렵사리 지핀 불씨를 여하히 되살리는 것이고 둘째, 시중에 풀린 과잉유동성을 흡수해서 인플레도깨비의 준동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재정건전성 확보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월스트리트 자본주의모델이 실패한 만큼 대안을 강구하는 것이다. 한 금융산업이 말썽을 일으킬 경우 삽시간에 시장전체를 붕괴시키는 등 시스템리스크에 의해 촉발된 만큼 적절한 대책이 절실한 때문이다. 미국정부는 초고강도의 금융규제관련 법안을 의회에 상정했다. 유럽 등 세계 각국도 유사한 금융개혁을 예고하고 있다.

국가간의 공조체제 강화방안들도 거론되고 있다. 국제공인기관이 아님에도 잘못된 신용평가로 금융위기 발발에 한몫 거든 무디스, S&P, 피치 등에 대해 국제행동규범을 준수하도록 압박하고 조세피난처에 대한 규제도 강화할 예정이다. 위험을 숨긴 파생상품을 유통시키며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를 전세계로 확산시킨 헤지펀드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할 조짐이다. 헤지펀드는 100인 미만의 개인들이 사적으로 운영하는 소규모 펀드로 그동안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는데 미국은 사상최초로 헤지펀드 외에 사모펀드, 파생상품시장까지 감독할 방침이다. EU의 헤지펀드 규제안은 미국보다 훨씬 강도가 높다. 9천800여 개의 헤지펀드들이 1조3천억 달러의 자산으로 세계경제를 유린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차제에 토빈세(Tobin's tax)의 신설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금융위기방지차원에서 국제투기자본(핫머니)이 국경을 넘을 때 고율의 세금을 매기는 것으로 노벨경제학 수상자 제임스 토빈이 1978년에 주장했었다. 투기성 자금에만 선택적으로 적용해 당위성도 충분하다. 각국의 재정수입 증가에도 일정부분 기여할 것이 틀림없다. 우리나라처럼 펀더멘털이 취약한 이머징마켓으로서는 더욱 절실하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가장 적극적이다. 반세계화론자들은 한술 떠 뜬다. 토빈세로 거두어들인 자금으로 국제금융위기의 피해를 본 제3세계국가들을 돕자는 것이다. 그러나 토빈세 도입에는 국가간 컨센서스 형성이 절대적이어서 실현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헤지펀드가 미국 4천400여개, 영국 2천200여개 등으로 전체의 67%가 이 두 나라에 몰려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골드만삭스 출신 로버트 루빈이나 헨리 폴슨 전 재무장관 등의 미국정부에 대한 입김이 여전한 데다 폭탄제조자들이 아직까지 금융기관들의 요직을 장악하고 있는 점도 걸림돌이다. 심지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벤 버냉키 의장조차 신용공급자들에 대한 규제에 소극적인 실정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세도(稅盜)들에 대한 노기(怒氣)어린 질타는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 언제까지 절대다수의 선량한 세계시민들이 영미식 금융자본의 봉 노릇을 해야 하나. 인간적 세계화의 길은 여전히 멀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