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태어나고 성장해 특정 지역에 대한 소속감이 없었던 나에게 단지 '인천'이라는 이유만으로 배타시하거나 끈끈한 동질감을 표현하는 문화는 흥미롭게 다가왔다.
지인들의 우려와 달리, 다행히도 지난 1년간 인천의 '짠맛'을 경험할 기회는 없었다. '짠맛'이 영영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진정한 인천인'을 만날 기회가 없었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적어도 짧은 기간 내가 경험한 인천은 여기서 나고 자란 토박이들의 도시라기보다는 외지인들의 '제 2의 고향'이었다.
관심을 갖고 보니, 외지인들이 인천에 정착한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역사를 이루고 있었다. 19세기 말 '문명의 창'이었던 개항 도시의 명성에 걸맞게, 각국의 외국인들이 인천을 통해 한반도에 첫 발을 내디뎠다. 한국 전쟁 후에는 서해안을 따라 남과 북에서 모여든 피난민들이 정착했다. 이후 화교를 포함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는 고향이 가깝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대처(大處)의 꿈을 안고 인천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었다.
타지인들의 이주를 계기로 형성된 근대 도시 인천은 어느 도시보다도 충분한 다문화 공존의 역사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미 오래전, 서양과 동양, 중국과 조선의 문화가 접속하는 '창(窓)의 역할을 했고,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뒤섞여 사는 '이방인의 고향'이었던 까닭이다.
인천 새내기인 나는 인천의 다문화성이 공시적인 면뿐만 아니라 통시적인 면에서도 발현되기를 바란다. 피부와 국적, 그리고 고향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며 소통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도시 인천에 아로새겨진 다양한 문화 접속의 기억들, 인천의 고유한 역사와 전통을 현재화하는 일도 더없이 중요한 일이다.
한국의 크고 작은 도시들이 대부분 도심 개발과 외적 성장을 목표로 하면서, 도시인의 고유한 이야기가 담긴 특별한 장소들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다른 도시들과 달리, 나는 인천에 아로새겨진 한국 근대화 과정의 기억들이 오래도록 보존되고 재해석되기를 바란다. 개항과 식민지, 그리고 전쟁과 산업화 과정에서 이루어진 건설과 파괴의 자취들이 '개발'과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한순간에 사라지는 일이 없기를 희망한다.
지난 1년 사이에 방문했던 배다리 지역과 인천아트플랫폼에서 나는 그 작은 희망의 불씨를 보았다. 헌 책방 거리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몇 개 남지 않은 배다리의 책방들 사이에 아벨 서점이 있다. 건물 2층에 아담한 문화 공간을 마련한 서점 주인은 갈 곳 없는 도시인들에게 그곳이 휴식과 소통의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 옆에 선 나도 내심, 쇠퇴와 창조가 공존하는 이 기묘한 활력의 거리에서 그의 소망이 반드시 실현되기를 기원했다. 건너편의 스페이스 빔은 옛 양조장의 자취를 그대로 보존한 채 도심의 대안문화공간으로 멋지게 탈바꿈한 사례를 보여준다. 지난 달 중구 해안동에 개관한 인천아트플랫폼 역시 약 100년 전의 근대건축물과 거기에 담긴 이야기들을 되살려낸 새로운 형태의 복합문화예술공간이다.
인천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들 문화공간에서 나는 인천의 기억과 희망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었다. 도시인의 삶의 문제가 세계화와 성장, 개발의 논리에 뒷전으로 밀려나는 시대에, 적어도 이들 공간은 도시에 사는 '사람'과 '문화', 그리고 '환경'의 문제를 우선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 특별한 인연의 고장인 인천이 도시 곳곳에 담긴 사람살이의 이야기와 문화의 향기, 그리고 환경의 가치를 존중하고 보존하는 '사람의 도시'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곧 인천세계도시인문학대회(10.19~21)가 열린다. 세계의 인문학자들이 '사람의 도시를 위한 인문학적 성찰'이라는 주제로 도시에 대한 꿈과 고민을 서로 나누는 이번 자리를 빌려 인천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성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