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무사
[경인일보=정리/정진오기자]한국인에게 일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매우 다양하다. 일례로 인하대학교 일어일본학과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진 결과, 일본의 전통 복장인 '기모노'(着物)를 비롯하여, '사무라이'(侍), '후지산'(富士山), 지진, '스시'(壽司), '스모'(相撲), '마쓰리'(祭り) 외에도, '닌자'(忍者), 경제대국, 온천, 화산, 천황, 닌텐도게임, 소니워크맨, 도요타자동차 등 여러 영역에 걸친 다양한 답변이 있었다. 물론 열거한 일반적 이미지 외에 식민지 지배나 독도문제 등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부정적 이미지도 많았다. 이러한 결과는 거의 모든 한국인에게 공통된 현상으로 여겨진다. 한마디로 한국인에게 일본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특별한 외국으로서 관심도가 높은 국가이며, 그 배후에는 같은 동양 국가로서 순수한 이국문화에 대한 관심과 식민지 지배를 에워싼 부정적 이미지 등이 공존한다고 볼 수 있다.

전술한 특징은 반대로 일본인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가 특별한 인상이나 존재감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다시 말해 일본인에게 한국은 거의 무관심한 존재에 가깝다. 물론 이른바 한류(韓流) 열풍 이후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는 하나, 성별이나 연령을 초월한 형태의 보편적 성격이라고는 볼 수 없으며, 최근의 한류 열풍 또한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특정 분야에 국한돼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일본문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가 자연미보다는 인공미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일례로 정원을 살펴보자. 정원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인간의 주거환경 속에 배치시킴으로써, 인간 생활에 정신적인 위안과 정서적 안정을 도모하는 대표적 존재이다. 그런데 한국의 정원은 수목이나 연못 등이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범위내에서 자연과의 동화나 친화를 도모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일본의 정원은 한마디로 사람의 손에 의해 인위적으로 변형된 인공적 조형물이라는 인상이 농후하다. 극단적인 예로, 일본의 전통적 정원 양식을 대표하는 교토(京都) 료안지(龍安寺)의 '세키테이'(石庭)를 살펴보면, 정원의 중심 요소인 수목이 완전히 제거된채, 모래와 돌 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시 말해 정원속에 위치하는 조경물의 배치와 지형의 높낮이를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새로운 감각의 정원을 창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성 방식은 자연의 존재를 상징적으로 혹은 형이상학적으로 표현하는 일본인 특유의 미의식이 반영된 결과로, 인공미를 중시하는 일본문화의 성격을 웅변해 준다.

일본문화를 지탱하는 두 번째 키워드는 축소지향성이다. 이는 한국인에 의한 일본론의 명저로 평가되는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1982)속에서 제시된 개념으로, 축소지향이라는 개성적 기호(코드)를 통해 일본인과 일본 문화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학술적 시각을 지니고 있다. 동 저술에서 저자는 일본인들은 대상을 축소하여 자신의 손 안에서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일종의 심리적 안정감과 만족감을 얻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관련된 풍부한 사례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우선 일본인들은 작고 앙증맞은 물건 만들기에 탁월하다는 점으로, 저자는 일본의 전통문화에서 첨단 과학문명에 이르는 모든 영역에 걸쳐 다양한 예를 제시하고 있다. 나아가 저자는 역사적으로도 축소지향적 성향만이 일본인들을 풍요롭게 만들고 분발시킨 일본적 아이덴티티임을 역설하는 가운데, 이를테면 임진왜란때 대륙 진출을 꿈꿨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야망이나 태평양전쟁에서의 제국주의적 발상 등을 언급하면서, 일본이 축소지향이 아닌, 확대지향을 추구했을 때는 번번이 실패를 맛보며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의 문화교류 측면에서 본다면 일본은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친근감 느끼게 하는 존재이지만, 냉정하게 볼때 아직까지 한국인에게 미해결한 마음의 응어리를 느끼게 하는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비유가 적절할 것이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식민지 지배를 비롯한 교과서 문제,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 종군위안부 문제, 그리고 최근의 독도 문제에 이르는 과거 역사 문제가 거론되며, 일본을 보는 한국인 시각의 근저에는 여전히 일종의 정서적 갈등이 뿌리 깊게 존재한다.

최근 한국과 일본간의 문화 교류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한국에 있어 일본이든, 일본에 있어 한국이든 양국간의 문화 교류를 생각할 때 가장 바람직한 자세는 무엇보다 양국간에 뿌리 깊게 존재하는 역사적 상대성 혹은 특수성을 객관적으로 냉정히 직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대중문화, 즉 'sub-culture' 일변도에서 벗어나, 오늘 강의에서 살펴본 전통예능과 같은 'high-culture' 분야에서의 지속적인 문화 교류와 양국의 미래세대인 젊은 세대의 상호 교류 또한 적극적으로 심화시켜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