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에 묻어둔 이름들 29일 인천 중구 인현동 5 학생교육문화회관. 모퉁이 한 편에 서있는 '인현동 호프집 화재' 추모석과 위령비.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경인일보=강승훈기자]아들아, 딸들아 너희는 어디 갔느냐/이제나 저제나 불현듯 문 앞에 들어설 듯한/그 싱그러운 웃음 그 풋풋한 젊음/가슴에 지우지 못하고 삼백예순 날/너희 안부 물어볼 밖에 없는 못난 아비 못난 어미를 오오 용서해 다오. (후략)

'우리 모두 함께 듣는다' -시인 조우성

29일 인천 중구 인현동 5 학생교육문화회관. 모퉁이 한 편에 2m 높이의 위령비가 서있다. 바로 옆으로 작은 추모석도 자리했다.

중학생과 고교생을 포함해 57명 청소년의 목숨을 앗아간 인천 중구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 올해로 10년째를 맞는다.

1999년 10월30일 인근 학교에서 축제를 마친 학생 100여명이 불법 영업 중이던 술집에서 뒤풀이를 즐기다 예상치 못한 화마(火魔)에 희생됐다.

▲ 1999년 10월30일 발생했던 '인현동 호프집 화재' 현장 모습과 10년의 세월이 흐른 29일 오전 건물 모습(아래).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29일 위령비 인근에는 만개한 노란 국화와 하얀 국화 몇 송이가 놓여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고 있었다.

과거 불길에 자식들을 내어주고 아픈 기억으로 지금껏 지낸 부모들이 다녀간 흔적도 곳곳에서 발견됐다.

이곳 관리자에 따르면 28일부터 10여명의 가족이 찾아와 굵은 눈물을 보이고 돌아갔다고 한다.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곳에 큰 변화는 없었다.

단지 옛 축현초교 부지에 학생교육문화회관이 들어섰고 일대는 청소년 문화의 거리로 지정됐을 뿐 현란한 네온사인으로 치장된 간판은 여전했다. 어른과 청소년의 문화가 한데 뒤엉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 연출됐다.

여기에서 만난 고교생 김모(17)군은 "이 주변의 성인 공간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출입할 수 있다"며 "건전한 놀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두 자녀를 둔 장숙자(52·가명)씨는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마음이 너무 씁쓸하다. 사회가 우리 아이들을 방치하지 말고 제도적으로 보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현동 골목 곳곳에는 '참사 10주년 추모 행사'를 알리는 검은색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당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만든 '인현동 화재사고 유족회'(회장·이재원)가 준비한 것이다.

유족회는 30일 오전 위령비에 들러 참배한 뒤 유골을 뿌려주었던 월미도와 팔미도를 돌아볼 예정이다.

유족회원은 사고 직후 장학회를 만들어 불우한 환경의 학생들을 돕고 있으며, 십시일반 모아진 기금으로 현재까지 10여명에게 3천만원 가량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이 회장은 "미래 꿈나무들의 문화와 여가를 제도권내 교육에서 담당해야 한다"며 "두번 다시 아픈 과거가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