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양식 (전 경주대 총장)
[경인일보=]'부가 증가할수록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더욱 버림받고 있다. 지금도,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회의론자들은 이와 같은 불평등은 태초부터 있어왔고, 지구에 종말이 찾아올 때까지 우리와 함께 존재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어느 시민운동가의 말도 정권획득에 도전하는 용기있는 정치가의 말도 아니다. 우리시대 세계 제일의 부자인 빌 게이츠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설에서 한 말이다.

'21세기의 자본주의는 서비스의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장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새로 탄생해야 한다'고 빌게이츠는 선언한다. 그가 말하는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는 기존 자본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혁명적 발상이 아니고 이윤추구를 하는 기업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그 사회적 책임을 함께 강조하는 보다 진보된 형태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말하는 것 같다.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퇴임한 빌 게이츠는 시사주간지 타임을 통해 그가 앞서 언급한 새로운 자본주의인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의 개념을 보다 구체화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그 동안 수십억 명의 삶을 개선해왔다. 그러나 아직도 수십억 명이 빈곤과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우리가 더 창조적인 자본주의를 발전시킨다면 시장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더 잘 작동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며 생명공학, 컴퓨터, 인터넷의 혁명적 발전으로 빈곤과 질병을 끝낼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주게 될 것"이라고 그는 역설했다.

게이츠가 말하고 있는 창조적 자본주의가 아직은 그 개념과 내용이 분명하게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공동체의 윤리를 기초로 한 자본주의와 시장의 책임과 의무를 보다 강조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빌 게이츠의 이런 생각들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우리의 가까운 역사 속에 비친 우리 선조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에게도 빌게이츠에 못지않은 자랑스러운 부자가 일찍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300년 동안이나 부를 이어오면서 공동체에 대한 그들의 의무를 행해온 가문이 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가문의 부를 지켜온 것도 믿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이에 못지 않게 놀랄 일은 공동체에 대한 그들 가문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한 6가지 가르침(六訓)이 아닌가 한다.

첫째, 가문의 재산은 절대 만석을 넘기지 말라. 만석을 넘으면 토지를 늘리는 대신 빈민구제나 교육, 출판 등 사회를 위해 쓰라는 말이다. 둘째, 사방 백리 안에서 결코 굶어 죽는 사람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빈민구제에 관해서는 지역공동체내에서 조정이나 관아 못지않게 최부자 가문이 져야할 책임과 의무가 크다는 것을 깊이 인식한 것이다. 셋째,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말라. 이웃의 궁박한 사정을 이용하여 땅을 늘리는 부끄러운 일을 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넷째, 시집 온 며느리는 처음 3년 동안은 비단 옷을 입히지 말라. 며느리가 짐짓 가지기 쉬운 잘못된 마음 가짐과 생활 태도를 일찌감치 바로잡기 위한 교훈이다. 다섯째, 손님을 후히 대접하라. 폭넓은 바깥세계의 정보를 얻고 사회소통을 활발히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최부자 가문의 사랑채는 항상 손님들로 북적거렸는데 바깥세상을 향해 열린 창이고 소통의 장이었던 것이다. 여섯째, 벼슬은 진사 이상을 하지 않도록 하라. 벼슬은 교양과 학문을 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아니 되며, 벼슬길에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어있는 당파싸움에 말려들어 가문을 위태롭게 하지 말라는 뜻이다.

우리에게 전해진 이와 같은 최부자 가문의 가진 자의 도리와 책임은 빌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의 생각과 그의 실천과 크게 다른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절제하고 자기 것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것이 결국은 자신의 부와 가치를 지킨다는 것을 그들은 알았던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사회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사회에도 빌게이츠, 자랑스런 최부자 가문과 같은 훌륭한 생각을 가진 기업인과 시민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나와 우리사회를 건강한 공동체로 만들어가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제는 지구촌의 어려운 이웃들에게도 우리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날이 어서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