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는 크게 두 가지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지금 여기'가 싫어서 떠나는 자와 다른 하나는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과 환상 때문에 떠나는 자이다. 이곳의 혐오와 피로 때문에 어디론가 떠나는 자는 낯선 곳에서의 휴식과 평화를 기대할 것이다.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과 환상 때문에 이곳을 떠나는 자는 이색적 체험을 즐기며 권태로운 삶을 쇄신할 것이다. 어느 부류에 속하든 모든 여행자들은 다시 원래의 삶으로 복귀한다.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온 그는 변화된 자아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본질적으로 낭비가 아니라 풍요이다.
이 같은 여행에도 각자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나는 오래 전 인도여행을 하며 한국의 대학생들과 여러 번 마주친 적이 있다. 그들의 여행방식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돌아본 것을 자랑거리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초인적 힘을 발휘하여 보름 만에 델리와 캘커타와 뭄바이에 깃발을 꽂는다. 바라나시의 갠지스강을 보기 위해 이틀을 달려와서는 하루를 머물다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다. 그것은 영웅담처럼 여행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예찬된다. 나는 생각한다. 도대체 그렇게 스치듯 지나치며 무엇을 보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 같은 방식에는 질보다 양을 내세우는 우리의 세태가 작용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무한경쟁사회의 정복욕이 그들에게도 내면화된 것은 아닐까?
이와 더불어 내가 목격한 또 하나의 특징은 무조건 깎고 보자는 태도이다. 나는 인도의 늙고 남루한 자전거 릭사 운전수와 우리 돈 오백원을 놓고 십오분간 실랑이를 벌이는 학생을 본 적도 있다. 아마도 그 학생이 흥정에 이겼을 것이다. 저녁을 먹기 위해 길거리 식당에 들어서면 여기저기 앉아 학생들은 하룻동안 얼마나 많은 돈을 깎았는지 서로에게 자랑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여행지의 저녁 식탁에서 젊은이들의 가장 흥미로운 대화가 겨우 '돈 깎는 방법'이라니! 여행비를 아껴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무조건 깎고 보자는 태도를 아무 때나 불문율로 적용하는 그들을 보며 나는 우리가 여전히 시멘트처럼 딱딱한 도식적 사고방식에 젖어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어떤 방식이 가장 훌륭한 여행법이라고 단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여행이야말로 자기식대로 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여행자에겐 자기 나름의 철학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스스로를 이끌어갈 방향타가 필요한 것이다. 그곳에 왜 가며, 무엇을 볼 것이며, 이질적 문화와 사람들을 어떤 태도로 대할 것인지, 그리고 가장 멋지게 여행을 즐기는 방법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는 것은 치밀하게 여행 가방을 챙기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이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대학생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떠날 것이다. 사람들은 여행상품을 비교해가며 설레는 여행지를 결정할 것이다. 관광을 떠나는 사람이든 배낭을 메고 자유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든 모두가 되풀이되는 일상과 자기 자신을 쇄신하기 위한 것이리라. 수준 있는 여행은 최고급 호텔과 값비싼 산해진미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행자의 생각과 마음이 더 큰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 수준 있는 여행이 좋은 추억을 낳는다. 아울러 내면의 좋은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을 갖는다. 돌아오는 여행 가방을 쇼핑한 물건으로 가득 채우는 것보다 몇 페이지의 여행일지가 더 훌륭한 여행의 증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