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정호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경인일보=]매년 국내 전력소비량을 돈으로 환산하면 30조원에 이른다. 산불로 인한 피해액은 한해 1천200억원에 달하며 음주운전에 의한 사망자수는 매년 6천여명, 피해액은 무려 2천100억원이나 된다. AIDS에 의한 사망자 수는 현재까지 1천200명에 달하며 1인당 경제적 비용은 4억원으로 추정된다.

이 엄청난 손실을 줄일 수는 없을까? 이러한 문제들의 공통점은 법적인 조치로는 한계가 있으며 개개인의 자각이나 참여 없이는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고도의 자본주의사회에서 제도와 정책은 강제로만 규정하기엔 한계가 있다.

이러한 공익적 손실문제나 목표달성을 해결하는 데는 3E의 조치단계가 있다. 첫번째는 법적인 강압조치(Enforcement), 둘째는 기술적인 차원에서의 조치(Engineering), 셋째는 교육적인 조치(Education)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법적인 조치와 기술적인 조치는 그런대로 강한 편이다. 음주, 산불, 안전벨트 등에 대한 법적인 규제와 기술적인 조치만 해도 괄목할만한 수준의 강화나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적인 면 즉, 계몽과 공익 캠페인의 수준은 그러하지 못하다. 선진국에 비해 두드러지게 낙후하다. 과학적인 조사나 이론 없이 마구잡이식 구호가 난무할 뿐이다.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교통안전을 예로 들면 전국도로나 고속도로에는 아직도 '쉬어가요 졸음운전, 두고가요 음주운전'식의 4·4조 구호가 대부분을 이룬다. 어떤 표현이나 소구방법, 전략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진지한 고려는 거의 없다고 본다. 특히 이 문제를 과학적 이론과 조사연구와 결부시켜보는 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학문적으로도 이 분야는 낙후하다. 심리학, 마케팅학, 커뮤니케이션학, 사회학 등 관련분야에서 간헐적으로 연구가 나오고 있기는 하나 매우 빈약하다. 정부에서는 해당 이슈에 따라 표어 공모전을 벌이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과학적 접근의 가장 좋은 예는 공익 캠페인에 마케팅 개념을 도입하는 시도이다. 이른바 마케팅 이론의 핵심인 제품 (product), 가격 (price), 장소 (place), 촉진 (promotion)의 4P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다.

AIDS방지를 위해 한 개발도상국의 경우를 예로 들면 콘돔보급을 확산시키기 위해 먼저 콘돔을 여러 가지 색상으로 제작했으며 (product), 편의점에서도 쉽게 콘돔을 구할 수 있도록 했다(place). 정부에서 보조하여 콘돔의 가격을 낮추고(price), 인기가수의 노래를 통해 사랑의 책임을 강조하도록 했다(promotion).

마케팅 개념을 도입한다는 것은 과학적인 조사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산불방지를 위해 맥과이어 같은 학자들은 무려 16가지 인식적인 접근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밤에 동물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 산이 인간들의 심신단련장이 아니라 동물들의 마을과 같은 곳이라는 인식을 주는가 하면(마을에 어떻게 불을 지르나!) 산불을 방지하는 행동 자체를 짜증스런 일이 아닌 스릴과 도전으로 인식하게 만들기도 한다.

공익 캠페인에 거는 일반인의 기대는 대체적으로 미미하지만 비용대비 효과를 생각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예를 들어 공익캠페인 전문가들은 효과적인 에너지 전략 캠페인으로 5%의 절약목표를 달성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연간 1조5천억원의 거금이며 같은 목표치를 적용하면 음주운전의 경우 한 해에 300명의 목숨을 구한다.

공익캠페인의 비용은 법적인 조치나 기술적인 조치에 비해 훨씬 적다. 운이 좋으면 히트한 공익광고 하나로도 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이는 과학과 전략의 영역이다. 소득수준의 증대로 복지가 향상되면 공익 캠페인의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암과의 전쟁, 자연보호, 낙태 줄이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등 수많은 사회적 과제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며 이를 위해서는 결국 법적인 강제조치는 최소 수준에 머물고 많은 부분이 공익캠페인에 의존하게 된다. 이제 OECD 국으로서의 면모를 살려 과학적인 공익캠페인의 개발과 지원에 눈을 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