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에 있는 한 대기업은 지난해 상반기에만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6천여만원을 지정기탁했다. '지정기탁'은 기부자가 지역·대상·사용용도 등을 정해 물품과 돈을 주는 사회공헌사업이다. 이 기업이 작년 상반기에 도움을 준 데는 40여 곳이다. 장애인단체, 경로당, 생계곤란가정, 무료급식소, 사회복지관 등이다. 한 해 전인 2008년 1~6월에도 30여 곳에 물품과 기부금을 줬다.
올해는 확 달라졌다. 이 기업의 올 상반기 지정기탁금 규모는 큰 차이가 없는 데 반해 수혜 대상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지정기탁금 1억3천여만원 중 1억원가량이나 '도시축전 티켓'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이 기업체가 수십개 복지시설에 지원한 돈이 올해는 고스란히 도시축전에 들어간 꼴이다. 이 기업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기관이나 모금회 등 양쪽에 생색을 내게 돼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고 봤다"면서 "받는 사람을 고려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공동모금회가 기부금품을 모집하는 목적은 '사회복지활동·사업에 필요한 재원 조성'이다. 공동모금회 측은 "인천에서 좋은 행사를 하는데 소외계층이 한 번 다녀갈 수 있게 하는 건 가치 있는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입장권을 받는 복지시설 관계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장애인복지시설의 한 관계자는 "공동모금회를 통해 받은 게 거의 없었는데, 올해는 도시축전 입장권을 받았다"며 "각 시설에 물어보면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도시축전 구경이 그렇게 급한 거냐"고 반문했다. 다른 복지시설의 센터장은 "도시축전 입장권을 받으면 도시축전에 가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소외계층의 문화욕구를 충족시키는 게 목적이었다면 차라리 문화상품권으로 주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도시축전 입장권 400장을 받은 동구의 한 복지시설은 입장권을 모두 소화하지 못해 지방에 있는 복지단체에 보내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기업들은 왜 도시축전 입장권을 구입해 복지시설에 보냈을까. 도시축전 입장권을 공동모금회에 지정기탁한 기업 대표가 인천시 관계자들과 '인천세계도시축전 입장권 기탁'이란 문구와 구매금액이 위아래로 적힌 표지판을 들고 기념촬영을 한 뒤 이를 홍보에 이용하기도 했다. 기업과 시 사이에 얽힌 관계가 기업으로 하여금 입장권을 구입케 했다는 얘기다.
지정기탁금을 배분하는 공동모금회 배분분과실행위원회에도 '도시축전 입장권 구매 지정기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고 한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배분분과실행위원회 위원(사회복지전문가)은 "사회적 약자에게 돌아갈 몫을 티켓으로 둔갑해 얻는 영향·효과가 무엇인가"라며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인천시에 휘둘려 원칙 없는 모습을 보인 과정에 대한 깊은 성찰과 엄중한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동모금회 지정기탁 현황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에 나섰던 민주노동당 인천시당은 "도시축전 입장권을 구입하기 위해 사용된 기금은 그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다"는 성명을 8일 냈다.
지난 10월 말을 기준으로 올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전체 모금액은 약 98억원이고, 이 중 절반(49억원) 정도가 지정기탁 사업에 들어왔다. 지정기탁액의 10~15%(6억원)가 도시축전 입장권 구입에 사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