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시인과 시인지망생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문화적 욕구, 특히 창작의 욕구를 충족하고 발산할 통로가 우리 사회에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예술 창작을 통해 자기의 고유한 세계를 창조하고 싶은 사람들의 꿈을 우리 사회는 다양한 길로 열어주지 못한다. 따라서 값비싼 도구나 재료, 전문적 교육의 혜택 없이도 시도해 볼 수 있는 시인의 길은 그만큼 매력적이며 그러기에 많은 지망생들을 불러모은다.
일단 시인이 되기만 하면, 시인이 대우받을 수 있는 제도와 여건이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다는 점도 시인의 욕망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2008 문예연감'을 보면, 현재 발간되는 문학잡지 가운데 종합문예지를 제외하면 시 전문 잡지의 비중이 가장 크다. 또한 2007년에 시상한 문학상 190종, 수상자 350명 가운데 시 부문 수상자는 136명에 이른다. 시 부문 전문 문학상도 2007년 한 해에만 41종이나 된다. 놀랍게도, 문예지와 문학상의 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시가 가진 장르적 특성 자체가 시인을 양산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시는 길이가 짧고 함축적이며 다른 장르에 비해 소통의 절차가 간편하다. 물론 길이가 짧다고 해서 작품 자체가 단순한 것은 결코 아니다. 압축, 비유, 상징 등을 최대로 구사하는 시어의 특성상, 한 편의 짧은 시에는 때로 측정할 수 없는 세계의 폭과 깊이가 표현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단 시각적으로 짧은 시의 길이는 인터넷, 휴대폰 등의 새로운 디지털 매체뿐만 아니라 신문, 잡지 등 기존의 매체를 통해서도 빠르고 간편하게 유통될 수 있다. 유통의 용이함과 간편함은 시가 가진 상품적 가치를 제고시킨다. 최근 앤솔로지 형태의 시집, 또는 해설과 일러스트를 대폭 보강한 형태의 시집이 출판 시장을 주도하는 현상이 그 사례이다. 시인은 여전히 가난하지만, 시는 자본주의 유통 구조의 한 편을 차지한 채 그 팬시(fancy)한 상품성으로 시인지망생들을 유혹한다.
이렇게 어떤 이유로든, 시인과 시인지망생은 넘쳐나지만 그에 비해 시를 읽는 독자의 수는 제한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독자층 또한 극히 한정되어 있으며, 독자들이 주로 읽는 시인이나 시집의 경향도 일부에 제한된다. 정기적인 통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애송시'는 교과서 수록 시인들의 작품 목록과 거의 일치한다. 잘 팔리는 시집들은 대체로 서정시 위주이거나 애틋한 사랑의 감정이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들이 많다. 이렇게 본다면 극히 제한된 독자층이 특정 경향의 시를 소비하며, 기형적인 시인공화국을 떠받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인의 수가 아니라 독자의 수와 수준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인의 숫자, 그리고 그들을 위한 문예지와 문학상을 더 늘리는 것이 아니다. 안목과 수준을 갖춘 다양한 독자층을 육성하는 일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학교와 일상에서 다양한 시의 세계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시 읽기도 일종의 학습과 훈련을 통해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의 하나이다. 또 한편 그것은 무궁무진한 해석 과정에서 창조의 기쁨과 성취감, 삶의 성찰과 위안을 선사받는 일이기도 하다.
더 많은 독자들이 이같은 창조적 해석의 즐거움을 누리고, 시인과 독자가 활발하게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비단 독자의 안목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화적 수준을 끌어올리는 하나의 길이 될 것이다. 시인 공화국에서 독자공화국으로의 변화, 그것이 이 비대한 시인공화국의 갈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