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뛰어난 학자이면서 또 뛰어난 시인이기도 했던 다산 정약용은 국화의 아름다움을 다섯가지로 꼽았다. 늦게 피는 것, 오래 견디는 것, 향기로운 것, 고우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깨끗하면서도 싸늘하지 않은 것. 이 네 가지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국화의 덕이고 아름다움이었고 여기에 다산이 더한 것이 '국화 그림자(菊影)'였다.먼저 산만하고 들쑥날쑥한 물건을 모두 치워 벽을 깨끗하게 한다. 벽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국화를 세우고 알맞은 곳에 촛불을 놓아서 국화의 그림자가 벽에 비치게 한다. 가까운 그림자는 꽃과 잎이 서로 어울리고 가지와 곁가지가 질서있게 늘어서 마치 묵화를 펼쳐놓은 것 같고 그 다음 그림자는 너울대고 어른거리며 춤추듯 하늘거려 달이 떠오를 때, 동쪽 나뭇가지가 서쪽 담장에 비춘 것 같으며 멀리 있는 그림자는 흐릿하여 엷은 구름이나 노을 같고 없어지거나 소용돌이치는 그림자는 밀려드는 파도 같다고 하였다.
다산 흉내를 내보겠다고 촛불 앞에 국화를 둔 적이 있다. 벽을 깨끗이 치우지 못해 다산의 묘사에는 견줄 수 없었지만 너울대는 촛불, 불꽃심, 속불꽃, 겉불꽃 겹겹의 밝기와 온도를 가진 촛불, 국화는 촛불 앞에서 정말로 묵화 같기도 하고 나뭇가지 같기도 하고 구름 같기도 하고 노을 같기도 하고 파도 같기도 해서 한 폭의 큰 수묵산수화 같았다.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흔들리는 그 그림자 그림은 살아있는 것처럼 쉴새없이 변하였다. 이 장면을 근경에서 원경으로 세 단계로 나누어 세밀하게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다산의 과학적 시선도 흥겨웠고 바람에 흔들리듯 일렁이는 국화의 그림자 그림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 한편이 덩달아 일렁이며 눈이 아린 듯, 시린 듯 시흥이 솟는 것 같았다.
시(詩)란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사물의 본질을 운율에 담아 사람의 성정을 기쁘게 하고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한다. 다산이 발견한 이 새로운 세계는 국화 단독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국화가 촛불과 어울려 만들어내는 세계, 국화가 다른 사물과 소통하여 만들어내는 세계의 아름다움까지 국화의 세계로 확장하는 효과를 수반한다. 아니 아름다움(美)을 느끼는 일 자체가 우리 자신과 국화와 촛불, 그리고 무수히 많은 사물이 어울려 나누는 대화로 만들어지는 것임을 다시 깨닫게 한다. 그리고 밝은 것만 비추는 것이 아니라 어둠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촛불 덕분에 아름다움에는 가슴 아린 감동이 섞여있음을 또한 다시 느끼게 된다.
여름내 땀방울로 논물을 삼아 지은 쌀을 잃고도 호젓하니 웃을 수밖에 없는 백형의 주름살에서 문득 수묵 산수화를 닮은 그림자, 골짜기 그늘마다 슬픔어린 사연을 지니고도 천하의 빼어난 경치(天下之絶勝)로 감동을 주는 국화가 떠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하였다. 늦가을이 의미있는 것은 수확이 끝나기 때문이다. 들녘에 늦게 핀 국화는 가을걷이를 마치고 텅빈 들녘을 바라보는 농부의 소박하고 후덕하고 맑고 향기로운 심정에 좋은 짝이 아닌가.
가을걷이 끝내고 한해살이를 마무리해가는 이즈음, 나의 백형을 비롯, 국화 같은 이 땅의 모든 농부, 모든 시민께 감사드린다. 이 분들이 받으실 건 오로지 감사뿐이다. 교만한 지주인양 감히 이 분들께 수고했다 말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