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국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전 국민 대상의 공적건강보험이 없다. 대신 65세 이상의 노령자와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의료보장(Medicare)과 빈민층을 위한 의료보장(Medicaid), 이렇게 두 개가 있다.
따라서 이 두 의료보장의 대상이 아닌 사람들은 민간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한 어떤 보험혜택도 받지 못한다. 결국 병원비를 전부 자기 주머니에서 내야 한다.
그런데 미국은 병원비가 무척 비싸다. 일단 병원에 가면 병원사용료를 내야하고, 또 의사에게 내는 진료비도 따로 있다. 일례로, 임산부가 출산을 하면 병원비만 우리 돈으로 2천만원 가까이 나온다. 이렇다보니 보험이 없으면 의료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민간보험에 가입하기도 쉽지 않다. 보험료가 세기 때문이다. 보통 한 가정의 1년 보험료가 1천500만원이나 된다. 그 나마 괜찮은 직장에 다니면 회사에서 보험료의 절반을 내 줘 보험에 가입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냥 무보험자로 남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양산된 무보험자가 현재 4천600만명에 이른다. 전체 미국인구의 15%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최고 국가라는 미국에 여태껏 전 국민이 가입하는 공적건강보험이 없는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자유와 자립을 중시하는 미 국민의 기질이다. 의료보건도 철저히 개인책임으로, 스스로 처리해야 한다는 의식이 미국 사회에 강하게 배어 있다. 국민 의료를 국가가 모두 떠맡아 세금으로 해결하는 것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식이다.
또 하나의 큰 이유는 민간 보험사의 견제다. 아무래도 공적보험은 민간보험의 대체재이다 보니 보험사로서는 공적보험이 달갑지 않다. 그래서 미국 보험사들은 기를 쓰고 그 동안 공적건강보험 확대를 반대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건강보험제도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지난 7일 미 국민 95% 이상이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의료개혁 법안이 연방하원을 통과했다.
물론 아직 상원 표결 등이 남아 있어 앞으로 어찌될 지는 미지수다. 야당인 공화당의 반대도 여전히 심하고, 보험사를 비롯해 직원들의 건강보험료 지원이 부담스러운 기업들의 반발도 더 거세질 양상이다.
아무튼 미국이 어떻게 나갈지는 두고 볼 문제지만, 여기서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이 하나 있다.
뭔가 하니, 앞으로 건강보험 개혁이 추진될 경우 미국이 짊어져야 할 재정부담 규모다. 미국 의회예산국의 자료에 따르면, 그 규모가 무려 1천100조원이 넘을 거라는 추산이다.
가뜩이나 이번 금융위기로 미국 정부는 이미 많은 돈을 썼다. 이런 상태에서 또 큰돈을 쓰면 앞으로 미국은 엄청난 재정적자를 감수해야만 한다.
문제는 재정적자 규모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달러가치는 하락하고, 국채 발행금리는 상승해 채권값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럼 미국 채권을 보유한 나라는 어쩔 수 없이 손해를 보게 된다.
특히 세계에서 미국 채권을 제일 많이 갖고 있는 중국이 심각해 질 수 있다. 거기다 그 동안 미뤄 왔던 위안화 절상(가치 상승)까지 맞물리면 중국경제는 휘청할 수 있다.
그렇게 되어 최악의 경우 중국이 작심하고 미국채권을 내다 팔기 시작하면 미국 경제는 물론이고 세계 경제는 다시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미국의 늘어나는 재정적자 문제가 중국을 거쳐 세계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너무 지나친 기우일까.
어찌 되었건, 이번 미국의 건강보험 개혁은 여러모로 관심을 갖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