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구 (논설위원)
[경인일보=]'외고는 공공의 적인가?' 외고폐지와 개선론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1974년 고교평준화 정책의 산물로 80년대 초에 과학고에 이어 태어났다. 본래의 설립목적을 상실했느니, 우수 인재를 싹쓸이한다느니, 사교육비 증가의 주범이라느니, 또 수월성 교육에 큰 몫을 했다느니…등등. 당사자인 외고나 학생 학부모 모두가 혼란스럽다. 대통령까지 나서 외고의 해법을 마련하라고 지시한다. 외고가 과연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가.

우선 폐지론자들의 주장이다. 외고가 이미 비평준화 시절의 입시명문고를 훨씬 능가하는 공룡처럼 비대해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란다. 올해 서울ㆍ경기 지역 외고의 이른바 명문 SKY대 진학률이 41.1%에 달한다는 통계나, 올해 초 판사로 임용된 138명 가운데 33명이 외고 출신이라고 한다. 한국 사회 지도층이 특정 고교 출신에게 집중돼 특정세력화하는 현상은 국가적으로 매우 바람직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대로 뒀다가는 편중 현상이 갈수록 심화할 것이 뻔하다는 논리다.

이 때문에 외고진학에 대한 열풍은 끝이 없다. 자녀가 외고에 합격이라도 하면 세상을 얻은 것처럼 잔치분위기다. 그렇지 못한 학부모는 은근히 샘을 내며 옆집이 부러워 어쩔줄 모른다. 어학영재 양성을 설립 목적으로 한 외고가 존속돼야 하는지도 냉철히 따져봐야 한단다. '어학'과 '영재'라는 개념이 어울리느냐는 그렇다 치더라도 요즘처럼 초등학생부터 영어에 매달리고 해외연수와 토익, 토플 시험 준비가 일반화한 상황에서 더 이상 영어에 올인할 교육기관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외고폐지에 반대하는 측의 주장을 들어보자. 수월성 교육의 필요성이다. 지금처럼 35년 이상 하향평준화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서 우수인재들을 모아 잠재력을 더욱 계발시키자는 것이다. 평준화를 보완하고자 수준별 이동수업이나 특기적성교육 등 많은 방법을 취해보았지만 일반고교에서의 수월성 교육에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학부모나 학생들 역시 공부하는 분위기에서 우수학생들이 경쟁하다 보니 이른바 명문대학에 들어가기가 유리하다는 측면이다.

또 다른 주장 중 하나는 경쟁을 통해 인재 양성을 가능하게 한다는 논리이다. 경쟁은 분명 동기를 부여하며 잠재력을 이끌어낼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글로벌 인재육성을 꾀한다는 점이다. 글로벌 인재육성이 모호한 개념이라고는 하지만 외고 나름대로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설립목적인 것은 분명하다. 남보다 앞선 외국어 구사능력을 통해 한국이라는 좁은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국제적인 안목을 키워준다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면 외고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30년 가까이 전통을 유지해온 학교들을 일거에 없앤다는 것도 그렇고, 그렇다고 이대로 놔두는 것도 문제다. 외고를 당장 없앤다고 해서 우리나라의 공교육이 살아난다면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과학고든 영재고든 자율형고든 이름과 형식만 달리한 학교들이 그 자리를 메울 것이 현재로서는 뻔하다. 지금과 같이 우리 사회 전체가 1등주의 심리에 사로잡혀 있다면 일시적인 대중요법에 그치게 될 뿐 근본적 치유책이 될 수는 없다.

중학교 평준화를 앞둔 70년대초 경기중·인천중 등 일류 중학교를 강제로 없애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폐지는 또다른 혼란과 사회적 갈등만을 유발할 수 있다. 다만 이 기회에 외고도 체질을 개선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교육과정의 편법운영이라든지, 오로지 대학입시만을 위한 교육, 그리고 중학교 우수학생의 싹쓸이를 이젠 그만해야 한다. 외고가 20여년간 누렸던 많은 기득권들을 일정 부분 이 기회에 내려놓지 않는다면 외고폐지 주장은 계속될 것이다. 선발방식의 과감한 전환이나 추천전형 확대, 교육과정의 충실한 운영 등을 통해 외고의 틀을 확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평준화 정책을 폐지하고 고교에서도 경쟁입시를 부활하는 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