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어느 날 IMF 외환위기가 찾아왔고 자본이 충실하지 못했던 많은 기업들이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산하였으며,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들도 상당수가 문을 닫거나 외국 자본 등에 팔리는 처지가 되었다.
이후 기업들은 부채관리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반면에 개인들이 부채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경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과거에 비해 금융기관 대출금리가 큰 폭으로 낮아진 데다 은행들이 적절한 자금운용처로 개인들에게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개인들은 이와 같이 금융기관 문턱이 낮아지자 주택구입·전세 자금, 결혼·장례 등 경조사 비용, 자녀들 학자금 및 생계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목적으로 금융기관 차입을 늘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03년에는 급기야 신용카드 사태를 맞아 약 360만 명의 신용불량자 양산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게 되었다.
필자가 이렇게 지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요즘 한국은행을 비롯한 주요기관과 여러 언론에서 줄곧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는 이때에 과거의 기억을 상기시켜 같은 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물론 가계부채는 일시적인 예산(소득)의 제약을 해소함으로써 가계경제를 안정시킬 뿐만 아니라 소비 진작을 통해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그러나 흔히들 경제는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말한다. 즉, 생명체의 건강상태처럼 경제는 좋을 때와 나쁠 때가 순환하는 모습을 보이게 마련이다. 문제는 경제가 나쁠 경우 개인의 경제활동 또한 위축될 수밖에 없고 이 때 많은 개인들은 소득이 줄거나 자산처분이 어려운 상황에 처함으로써 금융채무 불이행자(과거 '신용불량자')나 개인파산자로 전락하는 위험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2009년 6월말 현재 우리나라 가계의 금융부채는 사상최대치인 818조4천억원이며, 가구당 부채가 전국평균 4천125만원으로 추산되고 특히 경기지역은 4천823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부채의 상환능력 점검 지표인 개인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비율은 10년 전인 1999년말 75%에서 최근 2배 수준인 140%로 높아졌으며, 개인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상환부담액을 나타내는 원리금상환부담률(DSR·debt service ratio)은 약 15% 수준으로 초저금리인 현 상황에서도 임계치(20%)에 근접하고 있다.
이와 같이 증대된 부채규모와 약화된 상환능력은 경기나 시중금리 등 거시경제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가계가 받는 충격을 크게 한다. 경기침체 시에는 말할 것도 없고, 향후 경기회복 시에도 변동금리가 대부분인 주택담보대출은 금리상승에 따른 추가이자 부담을 통해 가계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다.
경제 전체로도 과도한 가계부채는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가계와 금융기관의 동반부실을 초래할 수 있고, 부채 증가에 따른 원리금 상환부담 증대가 소비를 위축시켜 경기회복을 더욱 지연시킬 수도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기관인 Fitch사가 향후 한국경제의 최대 리스크 요인을 가계부채라고 언급한 것도 이러한 점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다행히 최근 우리 경제는 생산 및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소비도 증가하는 등 경기가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가계 소득은 고용개선 지연 요인이 상존하고 있어 빠른 속도로 개선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가계는 소득 및 자산구성 등 상환능력을 감안하여 부채를 조달하고, 주택경기 부진 및 금리상승 등에 대비해 미리 상환계획을 마련해야 하며, 특히 부채증가 속도가 소득증대 속도를 추월하는 기간이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아울러 금융기관도 신중한 대출운용과 가계대출의 부실화 가능성을 점검하면서 외형확대 위주의 지나친 대출경쟁을 지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