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선진국이 맞나요?" 갑작스런 질문에 필자는 "아니요, 아직.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길을 향해 열심히 가고 있습니다."
곧이어 더욱 당황스러운 질문이 이어졌다. "오늘 우리 일행은 미국이나 일본 아니 우리 인도네시아에서도 경험하기 어려운 일을 겪었습니다. 길 모르는 우리 동료 세 사람이 광화문에서 남대문시장을 가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5분도 채 안되어 목적지에 우리를 내려준 택시기사가 한사람에 1만원씩, 모두 3만원을 내라고 했습니다. 요금을 지불하고 내린 우리들은 도저히 한국을 선진국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화난 모습,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하는 모습에서 필자는 말할 수 없이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우리는 이미 선진국이다. 세계12위의 경제대국, 부동의 조선수주 1위, 이미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반도체와 휴대전화, 정부와 기업의 모든 시스템과 서비스의 전산화 및 일상생활의 전산화, 자정이 넘은 시간에 전국 각지 및 외국에서 온 사람들로 대낮처럼 붐비는 동대문 시장 등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도저히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것은 이런 것뿐만이 아니다. 외국 공무원들이 며칠 있는 사이에 느낀 것들, 공동체를 위해 최소한 지켜야 할 것이 지켜지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많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줄서서 열차를 기다리고, 사람이 내리고 난 뒤에 차례대로 승차하고, 장애인·노인·여성·어린이에 대해 항상 우선 배려하는 마음 등 '당연히 지켜야 할 것'이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야 할 것이 있다면, 외국인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관심을 항상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극동의 작은 나라가 아니다. 지구촌 공동체가 한 이웃처럼 살아가는 사회다. 이제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이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게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필자가 2년 전 독일에서 열린 한국과 독일 정부간 세미나에 정부대표로 학계의 몇 분과 함께 참석한 적이 있다. 독일 정부는 한국정부의 혁신과 전자정부 수준에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양국 정부 간 협력을 더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세미나를 마친 후 독일정부는 우리 한국측대표단을 위해 한국교민들로 구성한 공연단의 성대한(?) 공연을 준비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필자는 독일정부에 세 가지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우리의 간호사와 광부를 독일에서 일하게 해주어서, 독일이 통일을 해서 우리나라와 국민에게 희망을 준데 대하여, 1997년 한국의 경제위기극복에 도움을 준 것에 대하여'.
공연을 마친 뒤 무대에서 직접 공연을 한 나이가 꽤 들어보이는 한 여성이 짜증 섞인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아까 '독일에 감사하다'는 말을 했는데 그것은 아주 잘못된 표현입니다. 바로 독일이 우리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정부대표가 돼서 뭘 좀 잘 알고 말해야지."지금도 그 여성이 한 말을 필자는 잊지 못한다.
"선생님, 1962년부터 우리 간호사가 여기 온 뒤 무슨 일을 했는지를 아세요? 독일간호사들은 도저히 하지 못하는 일, 시체를 닦고, 시체를 화장하는 그런 힘든 일을 했습니다."
독일에 온지 몇 년이 흘러도 젊은 아가씨들은 결혼을 할 수 없었다. 이역 땅에서 신랑감을 구하지 못한 것이다. 한국인 광부들이 일하고 있는 탄광지역으로 버스로 하룻길을 달려 신랑감 구하기 단체 미팅을 나섰다. 그때 지하 300m에서 올라온 신랑감을 만난 아가씨들이 낳은 아들 딸이 그들이 낳은 손자와 함께 우리를 위해 공연을 한 것이다. 간호사들과 탄광광부들의 급여를 담보로 해서 독일정부로부터 빌린 2억 마르크는 오늘날과 같은 우리 경제발전의 기적을 이루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필자의 손을 잡고 놓지 못하는 나이든 여성분들과 함께 필자는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필자는 감히, 그들을 할머니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 중에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아가씨들도 있으므로…. 한 나이든 아가씨가 조용히 나에게 묻는다. "선생님은, 결혼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