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최근 배다리 개발의 중요 포인트 가운데 하나인 '배다리 관통도로'를 포기하고, 지하로 하기로 했다. 배다리 개발 문제가 새국면을 맞고 있다는 얘기다. 시가 주민과 문화·예술인들의 지적에 귀를 기울인 결과이기도 하다.
■ 옛 정취 간직한 배다리
배다리 마을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것은 도로변에 설치된 '헌책방 거리' 안내표지판이다. 과거에는 이 거리에 수 십개의 헌책방이 있었지만 지금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그 수가 줄었다.
지난 27일 배다리 현장을 찾았다. 인적은 드물었다. 헌책방을 들락날락하는 사람들과 차량에 짐을 싣고내리는 상인들의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 곳에서 37년째 아벨서점을 운영하는 곽현숙씨는 "헌책방 거리는 60년된 거리다"며 "배워야 한다는 것이 가슴에 응어리진 사람들이 모이던 곳이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헌책방을 찾는 분들이 말하는 것은 모두 추억이다"며 "인천을 떠나 살아도 책을 좋아하는 분들은 배다리를 찾는다"고 덧붙였다.
아벨서점은 배다리 일대를 역사문화지구로 지정하기 위한 서명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아벨서점에 있는 서명용지에는 '인천의 브랜드로 남겨두어야'(중구 운서동 김모씨), '느림의 미학을 간직하고 싶어요'(연수구 옥련동 김모씨) 등의 글이 적혀 있었다. 서명은 지난 9월 18일부터 시작됐다. 아벨서점에서만 지금까지 3천명 이상이 '배다리를 지켜야 한다'면서 서명했다. 아벨서점 이외의 곳에서 서명한 것을 합치면 모두 6천400명정도 된다.
곽씨는 "지금도 인천과 전국 곳곳에서 많은 분들이 배다리에 온다"며 "시민들이 배다리 살리기 운동에 나서지는 않지만 마음 속으로는 배다리가 남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고 했다.
이 곳에서 가장 오랫동안 헌책방(집현전)을 운영한 오태운씨는 "여기는 철길 너머와 달라 개발을 해서 될 곳이 아니다"며 "인천시내의 헌책방은 여기 뿐이다"고 말했다.
좁은 도로를 따라 걸어가면 문방구와 학습지를 도소매하는 가게들이 모여 있다. 상가들 유리문에는 '배다리, 우리가 지켜야 할 인천의 역사입니다!'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화성사'에서 일하는 한 사람은 "여기서 나가면 어디에서 장사를 하냐"며 "여기에 있는 문구사들은 도매이기 때문에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헌책방 거리 옆 좁은 골목길에는 여인숙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성인 두 명이 나란히 걸으면 어깨가 부딪힐만한 골목에 단층 건물의 여인숙이 아직까지 불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 문화·예술공간으로 거듭나
배다리가 역사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문화예술인들이 모여들고 있다.
대안공간 '스페이스 빔'도 그중 하나다. 스페이스 빔은 2007년 배다리에 있는 옛 인천양조장 건물로 이사왔다. 민운기 대표는 배다리 살리기 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민 대표는 "배다리를 그대로 두자는 것이 아니다. 있는 것을 잘 가꾸고 더 매력있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것이다"고 말했다. 또 "보상이나 이주대책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며 "문화·예술가들이 강제 수용 방식의 개발에 반대하는 이유를 (시는) 귀담아 듣지 않는다"고 했다.
청산(권은숙)씨는 지난 8월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 '나비 날다'라는 책쉼터를 꾸렸다. 배다리 주민들이 뜻을 모아 만든 문화공간이다. 청산씨는 서울에서 환경활동가로 지내다가 고향인 인천으로 왔다고 했다. 대안 쪽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청산씨는 "마을이 살려면 지역문화공동체가 있어야 한다"며 "공간을 하나하나씩 열어 사람이 사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첫 걸음으로 '나비 날다'를 연 것"이라고 말했다.
■ 역사·문화 보전해야
인천건축재단은 2010년도 도코모모 코리아 디자인 공모 대상으로 배다리를 신청해 놓은 상태다. 도코모모는 근대 건축물의 보전·활용 문제를 연구하는 단체다. 현재 배다리와 서울의 한 지역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배다리가 공모 대상이 되면, 약 1천개 팀이 배다리를 둘러본 뒤 많은 아이디어와 실천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게 된다.
배다리 지역의 가장 큰 특징은 다세대 주택이 아직 들어서 있지 않은채 우리의 골목길 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건축비평가 전진삼(광운대 겸임교수)씨는 "배다리는 일제 강점기때 자생적으로 형성된 마을이다"며 "시공간적으로 힘들게 살았던 근대화의 과정이 담겨있는 곳이다"고 말했다. 또 "다 쓸어버리고 수직 지향적 건물을 넣는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다"며 "문화예술인들이 뿌린 씨앗을 함께 경작할 수 있는 마음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