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정호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경인일보=]정부나 회사나 할 것 없이 모든 조직체는 좋은 정체성 (Identity)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가 일 잘하고 회사가 돈 잘 벌면 되지 무슨 정체성이 필요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의 조직체 경영에 있어 정체성은 필수불가결하다. 모든 조직은 저마다 역사와 개성과 문화가 있게 마련이며 이를 반죽시킨 것이 정체성이다. 정체성이 없으면 조직은 오래가지 못하고 힘을 극대화시키기 힘들다. 좋은 조직은 자기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조직원들을 담합시키며 환경에 반응한다.

조직체 정체성의 전문가인 로렌스 애커먼은 좋은 조직체의 정체성을 위한 7가지 조건을 설명한다.

첫째는 실존성이다. 조직체는 마치 사람 같아서 스스로에게 삶의 의미가 주어져야 한다. 나름대로 조직의 존재가치를 추구해야 이 문제가 풀린다. 둘째는 개별성이다. 사람도 모두 다르듯이 조직도 자기만의 특색을 가져야 한다. 셋째는 일관성이다. 창업이나 출범 때부터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설명할 수 있는 일관성이 필요하다. 아무리 조직체가 변해도 면면이 이어지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넷째는 의지이다. 정체성은 앞으로 이 조직체가 무엇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일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는 가능성이다. 좋은 조직체의 정체성은 가능성을 내포한다. 사실 정체성 자체가 미래지향적이다. 여섯째는 관계성이다. 정체성에 의해 조직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다르게 설정되어야 한다. 조직체가 좋은 정체성을 가지면 아래, 위, 옆의 구성원들이 새로운 관계 속에서 만난다. 마지막은 이해성이다. 조직체의 정체성이 남에게 쉽게 이해되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정체성도 너무 복잡하거나 애매해서 이해가 잘 되지 않으면 실패한다.

뚜렷하고도 좋은 조직체의 정체성은 조직체 관리의 효율성을 최대화시킨다. 인사, 행정, 재무, 기획의 여러 정책들이 흩어지지 않게 만드는 것이며 정책과 행동에 대한 설명을 명백하게 해준다.

정부의 경우 정체성은 한 정권이 다른 정권과 달리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궁극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나를 보여준다. 정부의 정체성의 정점에는 대통령이 있다. 대통령이 행하는 인사, 사업, 정책, 대화 모든 것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나타난다. 좋은 정체성을 가지는 것은 그러한 것들이 하나의 궤를 가지는 것이다. 이제 MB정부는 4대강 살리기, 세종도시, G20 회의, 녹색성장 등 수많은 사업들을 계획, 추진하려고 한다. 국민들에게 이 모든 것을 잇는 무언가의 축이 느껴져야 한다. 그 축이 무언지 굳이 이름 붙일 필요 없이 좋은 정체성을 가지면 자연스레 이를 설명하는 이름이 붙게 마련이다. 문제는 그러한 뚜렷한 정체성이 대통령의 머리와 마음 속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MB 정부는 스스로를 실용정부라고 부르고 이를 정부의 정체성으로 주장하며 자기변호를 열심히 했다. 실용정부는 괜찮은 이름이다. 이 대통령의 성격과 잘 어울린다. 그러나 실용정부에서 말하는 실용은 스타일이지 정체성은 아니다. 이 대통령이 자신의 정부를 실용정부라고 말하는 것은 좋으나 자신의 통치의 정체성을 실용이라고 해서는 안된다. 도대체 실용이라는 축으로 지금과 미래의 사업과 정책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면에서 MB정부의 정체성은 차라리 녹색성장정부로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비록 외교나 국방, 안보면에서 설명력이 떨어지나 사업과 정책의 중점을 환경과 인간을 강조하는 질적성장으로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실용정부보다는 훨씬 나은 정권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다만 녹색성장의 의미를 더욱 구체적으로, 더 이상적으로 밝히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서민을 중요시 여기는 인본주의와 과학기술에 바탕한 환경주의. '나는 한국적 녹색성장의 주춧돌을 놓는 사람'이라는 개인적 정체성이 '실용주의 정부의 책임자'보다 더 낫다고 본다. 실용주의 정부는 MB정부의 일하는 스타일을 명명하는 것으로 역할이 충분하다. 대통령의 머리와 마음 속에 자신 있게 형성한 정체성이 있으면 된다. 그 정체성이 성공적인 것이면 이 정부가 끝날 때쯤 멋있는 이름을 언론들이 붙여줄 것이다. 현재까지 내놓은 것으로는 '녹색성장정부'가 제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