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완 (논설위원)
[경인일보=]'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했다. 시련을 겪은 뒤 더 강해짐을 말한다. 우리의 현실을 비춰 보면 명문으로 조상들의 슬기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강하다 못해 대의(代議) 민주주의 체제에서 민의를 대변하는 힘이 넘쳐난다. 둘로 나눠진 민의가 숱한 대결 국면을 겪으면서 견고해져 이제는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자세가 자연스러울 정도다. 정치권이 그렇고 노사도 마찬가지다. 사회단체도 다르지 않다. 최근에는 지역간 다툼으로까지 번져 사생결단 태세다. 예외는 국민이며 서민들이다. 시련을 겪고 또 겪어도 고단함만 남는다. 이들을 위해 싸우는 부류는 없는 듯하다.

최근의 대형 이슈만 나열해도 벌어지고 있는 대결구도가 얼마나 심하고 고착화돼 있는지 알 수 있다. 세종시부터 살펴보자. 원안은 행정중심복합수도 건설이다. 노무현정부에서 세운 이 안이 이명박정부로 넘어오면서 수정안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독자적인 도시기능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행정의 효율성도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행정도시를 만드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수정안에 답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근거는 서로의 주장뿐이다. 이같은 주장의 한쪽은 결과적으로 국익에 반하고 효율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불확실성을 놓고 두쪽으로 나눠 다툼을 벌이면서도 확신은 변하지 않고 있다.

'4대강 살리기'는 세종시와 논쟁거리가 다르지만, 추진하는 쪽과 반대편의 시각이 극심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대동소이하다. 정부는 가뭄·홍수·수질 등 물문제에 근본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밝히고 있다. 야당과 환경단체는 '4대강 죽이기 사업'이자 '대운하 전초사업'이라고 비판한다. 평행선이다. 궁금한 것은 세종시든 4대강이든 잘못한 쪽에서 책임을 질 것인지다. 다툼은 정치권과 경제·노동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문제, 지역간 이해관계로 해결이 쉽지 않은 행정구역 및 선거구제 개편, 수면하에서 숨고르기에 들어간 철도파업 등 메가톤급 사안이 줄을 잇고 있다.

부작용이 크다. 특히 격화된 여야 대치정국으로 인해 예산심사 과정이 순탄치 않다. 예산안 처리에 해넘길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경험보다 좋은 스승은 없다고 한다. 우리 속담에 '서당개 3년이면 풍월(風月)을 읊는 다'는 말이 있다. 어느 한 분야에 있어서 한 우물을 파듯 꾸준한 경험을 통해서 비로소 달인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답보가 아닌 진보를 거듭해야 가능한 경지다. 하지만 9단들이 즐비한 정치권 등에서 진보가 아닌 답습만 거듭하고 있다.

두바이에서 보듯 세계경제를 낙관하기가 조심스럽다. 내년 국내 경제성장률을 5%대로 전망하고 있지만, 지난 1년간 발표된 국내 예상 경제성장률을 되짚으면 지옥과 천당을 왔다갔다 했다.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은 세태를 보면서 정치권 등의 관심은 기득권에 쏠려 있는 듯해 서민과 경제가 걱정이다. 내년도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복병중 하나로 '가계부실'이 지목되고 있다. 경기가 빠른 회복세를 유지하고 있다고는 하나 근로소득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3분기 전국가구의 명목 근로소득이 월평균 227만6천원으로 지난내 동기에 비해 0.3%감소했다는 것이 통계청 자료다. 서민들의 빚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으로, 그만큼 가계부채의 상환능력도 최악이라 할 수 있다. 지표 경기와 서민들의 체감경기에는 아직도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시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즐겁게 해 주는 분야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2월 열린 4대륙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올해 치른 5개 대회를 모두 석권한 '피겨퀸' 김연아, 세계를 들어올린 역도의 장미란, 골프의 여제들, 남아공 월드컵 등이 그 것이다. 그러나 경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특정인들의 잔치에 불과하다. 두갈래에서 서로가 민의의 대변자임을 강조하고 있는 이들이 그동안 쌓은 내공을 경제난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서민과 기업을 위해 발산할때 비온 뒤 땅이 더 굳어져 시련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한편의 반전 드라마를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