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김종화기자]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고구려와 신라, 백제, 고려, 조선 등 뚜렷한 흔적을 남긴 국가들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눈다.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한국사에 한 획을 긋거나 아니면 한국사 속에 흐릿하지만 족적을 남긴 국가들도 많다. 그 예로 짧은 역사지만 한국사의 흐름을 바꾼 후백제와 태봉국이 대표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 보다 긴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변방에 위치해 역사의 중심에서 살짝 벗어난 국가가 있으니 바로 제주도에 있었던 탐라국이다.


# 신화의 섬 제주, 탐라의 탄생

제주도의 대표적인 유적지로 꼽는 곳 중 하나는 삼성혈이다.

삼성혈에는 본관을 제주도로 하고 있는 고·양·부 세성씨의 시조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가 이곳에 있는 3개의 구멍에서 솟아났다는 삼성신화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다.

구멍에서 사람이 나타났다고 하니 조금 황당하기도 하지만 탐라라는 국가를 다스리는 권력층의 탄생을 신화적으로 풀어낸 것으로 생각된다. 단군신화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단군 신화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최고 통치자의 탄생을 환웅과 곰의 결혼으로 태어난 단군의 출현으로 표현하고 있다.

동물과 인간이 결혼할 수 없지만 하늘을 믿는 부족과 곰을 숭배하는 부족의 결합으로 우리는 해석하고 있다.

제주의 삼성신화 또한 그러할 것이다.

▲ 국립제주박물관

이렇게 탄생한 3명의 성인은 남제주군의 연혼포에서 일본에서 배를 타고 온 3명의 공주와 만나 결혼한다. 후대 사람들은 연혼포 부근에 있는 혼인지라는 습지를 3명의 성인과 공주가 결혼한 성스러운 곳으로 믿고 있다.

제주도의 탄생과 얽힌 재미있는 전설도 있다.

전설에 따르면 제주도는 옥황상제의 셋째 딸인 설문대 할망이 흙을 몇 번 날라 만든 것이 한라산이고 이 흙을 나를 때 터진 치마 사이로 떨어진 흙덩어리로 인해 제주도 전역에 오름이 생겼다고 한다.

이 설문대 할망은 서귀포 고군산에 엉덩이를 걸치고 놀아 이곳에 둥그렇게 분화구가 생겼다고 한다.

또 성산 일출봉은 빨래 바구니로, 우도는 빨래판으로, 성산 일출봉 등산로의 기암괴석은 그녀가 길쌈할 때 불을 밝혔던 등불이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렇듯 제주 곳곳에는 섬과 탐라국의 탄생에 얽힌 다양한 신화가 서려 있다.

▲ 선사문화유적지

# 내륙 국가들의 쟁탈전에서 살짝 벗어난 '탐라국'

제주도에 국가가 있었다는 기록은 중국의 사서인 삼국지에서 처음 나타나고 있다.

삼한의 다양한 국가구조와 풍습을 소개하는 곳에서 제주도에 국가가 있었음을 알리고 있는데 삼국지가 쓰인 시기가 3세기경이니 아마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해양 문화의 특성상 독립 국가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겠지만 내륙 국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국가 형태를 유지했다. 예를 들면 서기 498년 백제 동성왕에게 사신을 보내 신하를 자청하며 여러 가지 물건을 바치거나 백제 멸망 후에는 신라에 복속하기도 한다.

삼국사기에는 내륙에 있었던 국가들의 구체적인 역사만 남아 있기에 탐라국의 구체적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이런 몇몇 기록으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내륙의 통일 국가가 서기 938년 신라에서 고려로 바뀐 후에는 탐라를 다스리는 통치자들이 고려로부터 성주 등의 직위를 받아 반독립적 형태의 성격을 띤다.

▲ 삼성혈

그러나 서기 1105년 고려가 탐라에 탐라군이라는 정식행정기구를 설치했고 16년 뒤에는 제주라고 개칭하면서 중앙의 통치력을 강화했다. 조선 태종2년(서기 1402년)에는 탐라의 실질적인 통치자인 성주와 왕자가 자발적으로 조선에 나라를 바치며 역사 속에서 탐라의 흔적은 사라지고 만다.

그럼 제주도에는 어떤 유적이 탐라국의 흔적을 전하고 있을까? 탐라국의 흔적을 찾기 위해 방문할 수 있는 유적은 그리 많지 않다. 왜냐면 화산섬이라는 특성상 옛 선인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유적이 형성될 수 없는 자연환경 때문이다. 그나마 탐라국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제주시에 있는 용담동 고분 유적이다.

용담동 고분에서는 탐라국 권력의 실체를 보여주는 철제 장검이 출토됐었다. 이 장검을 통해 철기 시대 탐라국 통치자의 지배력과 대외 교역 등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용담동 고분 일대에서는 고인돌과 주거지 유적도 발견되며 서귀포, 중문과 같이 남제주 일대가 아닌 제주시와 북제주 일대가 탐라국이 주무대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 삼성혈

※ 삼성혈 세 성인 만난뒤 성산 일출봉서 설문대할망과 인사

제주 신화 따라 걷기는 제주시의 삼성혈에서 시작된다. 삼성혈에는 세 성인의 탄생을 알리는 3곳의 구멍자리가 있고 그 주변에 제주만의 식생을 느낄 수 있는 나무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 곳 삼성혈을 살펴 본 후에는 동부관광도로를 타고 성읍민속마을을 지나 온평의 연혼포에 가야 한다. 연혼포 주변에는 혼인지도 있다.

또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를 끌고 있는 섭지코지를 방문한 후 성산 일출봉으로 가면 설문대 할망과 관련한 전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다. 설문대 할망이 빨래판으로 썼다는 우도가 멀지 않다.

우도는 소가 드러누워 있는 형태를 띠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하는데 부서진 산호로 이뤄진 백사장 등 빼어난 경관이 있어 제주를 찾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러 보는 곳이다.

사진/제주관광공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