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기헌 (수원시의회의장)
[경인일보=]독산성에 다녀왔다. 제야의 타종을 독산성에서 하자는 문화계 인사들의 의견에 동의하여 참으로 오랜만에 독산성에 올라갔다. 조선시대에는 독성산이라 불린 독산성은 남한산성과 더불어 한강이남 최고의 산성이라는 것과 수원·화성·오산의 옛 수원도호부를 지키는 요충지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이 결코 허황되지 않았다.

독산성은 너무도 잘 알려진 대로 임진왜란 당시 권율장군이 왜장 카토 키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와의 대군을 격파한 전승지이다. 왜군은 세작(간첩)을 보내 독산성에 물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승리를 확신했으나, 적의 의도를 간파한 권율장군이 독산성 정상에 흰 말을 세우고 흰쌀을 부어 목욕시키는 듯한 모습을 연출, 왜군 장수들과 병사들의 사기를 꺾어 대승한 곳이다. 권율장군의 탁월한 전술을 기념하기 위해 '말을 씻었다'는 뜻으로 '세마대(洗馬臺)'라고 하는 누대를 건립하였고 오늘날까지 독산성이라는 이름과 함께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곳 독산성, 아니 세마대에 오르면 사방이 한눈에 보인다. 그리고 과거 역사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조선을 지키고자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던 수원지역 백성들과 군사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또한 1760년 사도세자가 온양온천에 행차하였다가 환궁하는 도중 장마로 인해 황구지천을 건널 수 없게 되자 독산성에 유숙하고 쌀 20석을 성내 백성들에게 내어 배불리 먹였었다. 그 후 30년이 지난 1790년에는 정조가 현륭원 행차때 현륭원의 풍수적 문제와 사도세자가 행차하였던 유적지라는 사실을 알고 확인하기 위해 직접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우리 역사의 환란을 극복하고, 임금들의 관심이 많았던 독산성의 의미는 매우 뜻깊다 하겠다.

1789년 7월 15일 정조대왕의 명으로 수원도호부의 읍치가 융건릉 일대, 즉 화산(花山)에서 현재의 수원 중심지인 팔달산 일대로 옮겨지기 전까지 독산성은 수원도호부의 백성을 위한 산성이었다. 당시 수원도호부는 현재의 수원시와 화성시 그리고 오산시를 합친 곳이다. 결국 독산성은 오늘날 세 도시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었다. 역사적으로 반만년을 한 몸으로 지냈던 수원·화성·오산을 지켜왔던 산성이었기에 정상에 서있을 때 그 느낌이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현재 독산성은 행정구역상 오산시에 속해있다. 하지만 조금만 가면 올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융건릉이 나온다. 그리고 조금만 더 가면 2007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수원 화성이 나온다. 이 문화유산들은 각기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속해 있지만 늘 하나의 문화권에 속해 있었고, 더불어 그들에 의해 탄생된 것이다. 그래서 독산성에 올라서면 하루빨리 이 세 도시가 하나의 도시로 통합되어 운명을 함께 해야 한다고 역사속의 수원 백성들이 강하게 요구함이 느껴진다.

이제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행정구역 통합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물결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정부의 의도대로 억지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온전한 모습을 되찾고 화성과 오산 두 도시 시민들에게만 희망을 주는 것보다 수원과 함께 세개 도시가 한 몸이 되어 미래의 발전을 도모하고 온전한 역사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제2의 독산대첩을 이루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