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대욱 (전 경기도박물관장)
[경인일보=]백두대간 능선에서 한민족의 정신을 대변하며 천년의 민족사를 여울물소리로 전해주는 곳이 남한산성 동·서·남·북 산자락의 청청한 자태 노송(老松) 그리고 수려한 산하(山河)다.

민족의 젖줄 한강(漢江)을 휘감아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역사의 현장, 애국가(愛國歌)의 버팀목 노송은 단군 국조(國祖)의 태백산 고조선 건국터전 신시(神市)로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이래 민족의 상징이었다. 신라의 북방전략기지였고 고구려의 남진교두보였던 남한산성을 늘 푸른빛깔로 이야기하는 노송의 의연함에서 21세기의 당당한 문화민족, 오늘의 우리를 조명해야할 시대상황이다.

남한산성은 경기내륙에 버티고 앉은 남한 제일의 요해처다. 철옹성을 방불케 하는 내·외 이중의 성벽은 난공불락의 위용이고 동·서·남·북으로 용틀임하듯 험준하게 뻗어 내린 산자락을 휘감아 흐르는 한강을 앞에 두고 광나루건너 아차산성과 마주하여 저 옛날 고구려·백제·신라가 한강유역 확보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던 삼국 쟁패의 현장이었음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해준다. 수어장대에서 바라본 일망무제, 동북으로는 하남시, 서북·서남으로는 서울시 일원, 남동쪽으로는 성남시 일원이 시계에 잡히는 천험의 요새 그대로다.

남한산성은 주장산 또는 일장산으로 불리는 삼국 이래의 국방상 전략기지였다. 한강유역 일원의 물적·인적자원을 포용한 배후기지로서도 그러하거니와 하남시 일원의 춘궁리 이성산성과 더불어 남한산성은 백제시조 온조가 처음으로 도읍을 정했던 백제의 수도권 일원이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강은 생명의 근원이자 문화의 발상지다. 남한산성 북문에서 불과 1시간 거리에 한강변 미사리선사유적지가 있다. 신석기 시대인이 이곳에서 거대한 도시형태의 취락을 이루면서 농경문화를 정착시켰음은 남한산성을 활동무대로 한 신석기인과 청동기인을 거쳐 삼국시대인의 생활무대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백제시조 온조가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국을 건설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강유역을 확보한 자 융성했고 잃은 자 쇠미했음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삼국의 국경지대가 되어 관방의 터전이었음을 말해주는 산성과 읍성 보루 등이 유난히 많은 곳이 한강유역 남한산성 일원이다. 강북에 양진성, 옥수동토성, 수성리토성이 있고 아차산성 강안을 마주한 몽촌토성, 삼성동토성, 풍납토성, 금암산성, 암사리토성, 한강상류의 귀산토성, 남한산성과 지호지척에 있는 검단산성, 이성산성 등은 삼국이 각축을 벌이던 지리의 요충임을 말해주고 있다.

신라는 한강유역을 확보한 후 전략기지인 남한산성에 강력한 군단인 한산정(漢山停)을 설치, 고구려와의 쟁패에서 기선을 제압, 끝내는 통일의 패업을 이룩하였다.

이처럼 남한산성의 산하는 그대로 우리 역사의 현장이요 정신이다. 도시화로 인한 문화유산 훼손이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고려 고종(高宗)때 몽고의 2차 침략의 격전지, 살례탑을 물리친 남한산성의 산하는 민족사의 DNA다. 서울 세종간 연결 고속도로 터널이 남한산성의 산줄기를 뚫어 관통한다는 계획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눈앞에 둔 산성의 어제와 오늘에서 5천년을 하루같이 미소하는 자연수림 남한산성의 영원한 손짓에 우리 모두는 응답해야할 시점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