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구 (논설위원)
[경인일보=]한해의 끝에 서서 뒤를 돌아보면 어김없이 다사다난했다. 연말이면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말이라지만 올해는 더욱 그런 것 같다. 졸지에 두 사람의 전직 대통령이 영면을 하고, 김수환 추기경께서도 이들에 앞서 선종했다. 종교계와 정치계의 거물들이 돌아가셨을 때 종교 정파 지역 이해관계를 떠나 하나가 된 때도 있었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용서하세요'라는 유언을 남기고 각막을 기증해 두 사람에게 광명을 준 김 추기경의 숭고한 뜻이 온 데 간 데 없는 이즈음이다.

올 한해는 정말 슬프고 비극적인 일들이 점철된 해였다. 용산참사로부터 시작된 올해는 미디어법의 강행처리, 고 장자연 사건, 강호순의 납치살인극, 쌍용차노조의 총파업, 조두순의 여아 성폭행 사건, 세종시 수정논란, 신종플루의 유행, 4대강 사업논란 속에 국회예산안 처리의 파행 등으로 이어지면서 우리를 슬프게 했다. 안톤 슈낙의 오뉴월의 장의행렬과 가난한 노파의 눈물, 그리고 굶주린 어린 아이의 모습과 무성한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는 하얀 눈송이보다도 더 말이다.

게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등 미국발 경제위기는 세계와 우리 경제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웠으며 남북화해·협력과 국토의 균형발전정책 등이 물거품이 되려 해 그 끝이 어디인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온 나라의 이슈는 민생은 제쳐둔 채 4대강 사업의 찬반양론과 세종시 논란에 얽매여 국력을 소모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오죽하면 올해 한국 사회의 모습을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방기곡경(旁岐曲逕)이 선정됐을까. 旁岐曲逕(곁 방, 갈림길 기, 굽이 곡, 지름길 경)은 바른 길을 좇아서 정당하고 순탄하게 일을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하는 것을 비유할 때 쓰이는 말이다.

조선 중기 유학자 율곡은 "제왕이 사리사욕을 채우고 도학을 싫어하거나 직언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구태를 묵수하며 고식적으로 지내거나 외척과 측근을 지나치게 중시하고 망령되게 기도해 복을 구하려 한다면 소인배들이 그 틈을 타서 갖가지 '방기곡경'의 행태를 자행한다"고 지적했다. 율곡도 당시 동인과 서인이 극심하게 대립할 때 송강 정철에게 "공론이 허락하지 않을 때에 방기곡경의 길을 찾아 억지로 들어가려는 짓은 절대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세종시법 수정과 4대강 사업, 미디어법의 강행처리, 행정구역 통합 등 정치적 갈등을 안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를 국민의 동의와 같은 정당한 방법을 거치지 않고 독단으로 처리해온 행태를 보면서 적절한 비유라는 생각이 든다. 진정 국가와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과연 모든 이의 희망을 실현할 수 있는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를 성찰하지 않았던 한 해라고 교수들은 말하고 있다.

요즘 사방을 둘러보아도 어찌된 영문인지 살맛난다는 이들은 찾기 어렵고 온통 어려움에 신음하는 이들 뿐인 것 같다. 이것은 비단 물질적 가난 문제만은 아니다. 정신의 강퍅함, 즉 우리 인식의 협소함과 상상력의 결여, 유연성과 신선함을 잃어버린 사고와 의식의 경직, 그리고 이것이 만들어내는 총체적 문제일 뿐이다. 편 가르기, 편협하고 비논리적인 사고, 자기 소견에 갇혀 큰 틀을 이해하지 못하는 생각, 소통의 부재가 아닌가 한다. 이럴 때일수록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완악해진 우리들의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특히 지도자라고 불리는 이들은 그 알량한 권력과 완고함의 끈을 놓아야 한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어처구니 없는 폭력(?)이 민초들의 마음을 더욱 슬프게 하기 때문이다.

작은 촛불 하나가 온 방을 비추듯이, 故 김수환 추기경의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용서하세요'라는 유언의 말씀이 뇌리를 갑자기 스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카네기는 사람의 마음은 낙하산 같아서 펼치지 않으면 쓸 수가 없단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펼쳐 사랑하는 마음들이 모인 우리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감사하는 마음에는 기쁨이 있고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한해의 끝에 서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드러운 마음으로 그동안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잠시 접고 비움의 마음으로 경인년(庚寅年)을 맞이하자. 백호(白虎)의 기상으로 다시 한번 비상(飛翔)을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