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감히 스승을 평가하나"

   군사부일체의 유교 전통이 아직 남아있는 풍토에서 동료 교사는 물론, 학생이나 학부모가 교사를 평가하는 것은 금기시됐다.

   학교 책임자인 교장만 소속 교사를 평가해 근무성적평정(근평)을 매겼고, 이게 교사를 평가하는 유일한 잣대였다.

   그러나 사회 곳곳에서 상향·수평·하향 등 다양한 평가가 일반화한 상황에서 교단만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

   교원능력개발평가제(교원평가제)가 내년부터 본격 시행되기 때문이다.

   교원평가 법제화를 위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고, 한나라당ㆍ민주당,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ㆍ전국교직원노조, 이들 두 교원단체가 추천한 학부모단체 등으로 6자 회의체가 구성된 만큼 조만간 평가제 윤곽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법안 통과 여부와 관계없이 내년 3월부터 이를 모든 초·중·고교에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 교원평가 `대세'…어떻게 시행되나 = 평가 주체, 방법 및 평가 결과의 활용 등 구체적인 것은 모두 법안에 담긴다.

   6자 회의체의 각자 입장이 다른 만큼 공방이 예상되지만, 일단은 시행 자체에는 누구도 공개적으로 반대하지 않고 있어 어느 선에서 절충이 이뤄질지가 관심사다.

   절충점을 찾지 못해 회의체가 파국으로 치닫더라도 교원평가는 거부할 수 없는 대세다. 교과부는 이 제도가 교사 전문성 향상과 공교육 내실화를 위한 핵심과제로 보고 국회 논의와 관계없이 내년 3월부터 교원능력개발평가제를 전면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굳혔기 때문이다.

   전국 초·중·고교 3곳 중 1곳이 이미 시범학교로 지정된 마당에 전면 시행할 여건이 충분히 조성됐다는 점도 교원평가 대세론의 근거다.

   교과부 안은 현행 교원연수제도를 한층 강화해 우수 교사들에게 학습 연구년(안식년) 등 심화학습을 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주고 평가 결과가 좋지 않은 교사는 장기 집중 연수를 통해 전문성을 신장하고 교육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골자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교원평가제의 실효를 거두려면 인사나 보수와 연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지만, 교단에 미칠 파문 등을 고려해 당분간은 연수 자료로만 활용할 전망이다.

   교과부는 현재 교원평가제 시행 및 교원 연수체제 개선, 수업 전문성 신장 등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시안이 나오면 공청회, 토론회 등을 거쳐 최종안을 확정해 발표하고서 새 학기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평가는 초·중등학교 평교사뿐 아니라 교장이나 유치원 교사 등 교육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형국이다.

   서울시교육청은 내년 초부터 모든 공·사립 초중고교장을 대상으로 경영 성과와 학력증진 성과, 교사·학부모 만족도, 청렴도 및 자질 등을 평가해 저조하면 중임(重任) 배제 등 심각한 인사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아울러 교과부가 최근 발표한 유아교육 선진화 방안에 따르면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공립을 시작으로 유치원 교사들에게도 교원평가제가 단계적으로 시행돼 교사 인센티브 제공, 개인별 맞춤형 연수 등에 활용된다.

   ◇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절충될까 = 교원평가 법제화를 위한 6자 협의체가 본격 가동되면서 논의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인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지난 10월 제안한 6자 협의체는 교과위 여야 간사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전교조, 두 교원노조가 각각 추천하는 학부모단체가 참여해 교원평가제 법제화 방향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회의체다.

   협의체 구성은 전교조와 한나라당의 전격적인 태도 변화 덕분이었다.

   교원평가제 법제화에 참여하느냐를 놓고 전교조가 그동안 적잖은 내부 갈등을 겪었고, 한나라당도 이미 소속 의원들이 발의해놓은 법안이 있는 만큼 재논의할 필요가 있겠느냐며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한나라당의 동의로 협의체 구성의 최대 걸림돌이 사라진 만큼,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 교원평가 관련 법이 탄생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협의체도 실무회의 등을 거쳐 늦어도 내년 1월 말까지는 결론 내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세부사항을 놓고 각 주체의 이해관계와 주장이 제각각이어서 합의 도출을 낙관하기는 이르다.

   교총은 교원들이 수업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먼저 조성돼야 한다며 학습 연구년제 조기 도입, 교원 잡무 경감 등을 전제해야 한다는 견해다.

   전교조도 원론적으로 교원평가에 대한 찬성 태도를 밝히면서도 `교장에 의한 근무평정제 개선' 등을 선결조건으로 제시했다.

   학부모단체는 즉각적인 법제화와 학부모·학생의 평가 참여 보장, 인사고과 연계 및 부적격 교사의 교단 퇴출 등까지 요구하고 있다.

   또 정치권 일각에서는 법제화 여부와 무관하게 이 제도를 시행하겠다는 교과부 방침은 국회 기능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반발하는 등 이미 상당한 진통이 뒤따르고 있어 최악에는 협의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사교육을 잡으려면 공교육이 바로 서야 하고, 공교육의 수준은 교사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교육계의 오랜 명제에 따라 공교육 강화의 요체인 교원평가제가 어떤 경로로 확정돼 교육계에 새 바람을 몰고 올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