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상국 (소설가·김유정문학관 관장)
[경인일보=]지난 18일 폐막한 덴마크 코펜하겐의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는 130여 나라 정상들이 참여한 그 규모면에서나,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세계의 환경운동가들 수만 명이 매일 회의장 밖에서 벌인 환경관련 시위만으로도 지구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두 번째 지구는 없다' '말만 하지 말고 지금 행동하라' '부자 나라는 기후변화의 빚을 갚아라' 등의 시위구호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행동하는 양심, 지구에 사는 우리 모두의 마지막 희망 메시지, 그 절규만 같았다.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가 높은 굴뚝을 쳐다보며 우려했던, 인간 스스로 자초한 지구의 재난, 곧 인류의 멸망을 예언하는 여러 징후들은 남극 대륙의 빙하가 녹으면서 생기는 해수면의 상승 수치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무 심는 시기가 많이 앞당겨졌다든가, 강원도 영서지방에서는 그 식재가 쉽지 않던 주렁주렁 열매를 단 감나무들을 보면서 어찌 기후변화를 실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구 온난화에 대비한 저탄소 녹색성장정책은 현 정부의 최대 국정과제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투어 벌이고 있는 갖가지 온실가스 감축을 통한 각종 녹색성장사업이야말로 지구 살리기는 물론 그것이 곧바로 우리 모두의 건강과 복지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녹색은 안전·진행·구급·구호 등을 뜻하는 안전색체로 통한다. 더 넓게 우리는 살아있는 자연만을 녹색으로 표현한다. 이것은 녹색이 곧 생명이며 그 구원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 녹색이, 생명의 원천인 자연이 죽어가고 있는 현장을 본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녹지의 걷잡을 수 없는 도시화는 물론 골프장 등 산림의 난개발로 수십년된 나무가 잘려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구호가 왜 그리도 허황된 말로 들리는지. 자동차 한 대가 한 달 동안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1년에 800그루 이상의 잣나무를 심어야 한다니 오랜 세월을 우리와 함께 산 나무들의 그 주검이 어찌 예사로 보이겠는가.

온실가스 배출, 그 공해를 줄이기 위한 답은 처음부터 있었다. 나무가, 숲이, 자연이 그 그을음을 정화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것,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여 이룬 저 숲이 바로 녹색생명, 산소탱크라는 사실.

모든 나무는 인간이 해치지 않는 한 인간보다 몇 배 더 긴 시간을 이 지구에 머물면서 묵묵히 지구를 정화할 것이다. 마을의 한 그루 정자나무는 수백년 동안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이정표가 됐음은 물론 그 마을 사람들의 삶을 정화하는 신목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수백년 나이의 고목들이 터널을 이룬 파리 등 유럽 여러 도시의 가로수 거리를 생각한다. 청주의 관문인 플라타너스 터널길을 지나면서 그 가로수를 지켜낸 이들의 위대한 승리를 생각한다. 무더운 도시라는 오명을 안고 있던 대구가 푸른 도시 가꾸기로 온도를 낮춘 것에, 담 없는 건물들과 하나가 된 근린공원이며 가로수길 등 도시의 그 숲을 걸으며 놀라고 놀란다. 경주의 보문단지 가로수 길을 차로 달리면서 새삼스레 고도의 자연을 예찬한다.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길, 벚나무 아치로 도심 속의 숲을 가진 진해·하동 등 가로수 터널을 가진 도시들을 지날 때마다 그 속에 사는 시민들이 달리 보였다.

그러나 이 겨울 터널은커녕 가지들이 모두 뭉툭 잘려나간 채 그 나무줄기만 앙상한 고목 가로수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녹색 성장에 역행하는 검은 그을음 살리기를 저지르고 있는 여러 도시의 가로수 관리를 고발한다. 고목 한 그루가 전봇대 수십만 개보다 몇 배 더 효용가치가 크다는 것을 그들은 정말 모르는 것인가. 나무들이 그 수난 속에서도 저처럼 거대한 고목이 될 때까지 전깃줄을 땅 속에 묻을 생각도 못한 관리들의 그 무능을 나무의 이름으로 성토한다.

지구 기후변화의 주범 온실가스의 배출 피해를 줄이는 가장 가까운 길, 산과 물이 도심으로 들어와 하나가 되는 도시의 숲, 가로수 터널로 녹색도시를 디자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