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은 최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지난 10년을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좋은 일이라고는 거의 일어나지 않은 시기로 평가했다. 소득, 일자리, 집값, 주가 등이 모두 결국 제자리에 머물고 말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사정이 많이 달라 성취를 이루어냈지만 지난 10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4%를 밑돌아 과거 고성장 시대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년은 세계적으로 보면 확실하거나 당연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었던 명제들이 흔들려버린 시기였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확산되었고 규제를 완화하면 시장이 여러 문제를 잘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졌다. 금융산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고 특히 거대한 투자은행을 해법으로 보는 견해도 힘을 얻었다. 아시아 시장과 미국의 연계성이 약해졌다는 디커플링론도 잠시나마 힘을 받았다. 시장이 혹시 다소 이상을 보이더라도 경제학이 미세조정할 수 있는 충분한 수단을 갖추게 되었다고 믿는 거시경제학자들도 다수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고 난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그런 믿음의 근거는 그리 튼튼하지 않았던 것같다. 세계화는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지만 위기가 확대 재생산되는 부작용도 보여주었다.
대미 흑자국의 미국 투자가 미국의 유동성 확대와 부동산 버블 형성에 일조를 하고 그 버블이 붕괴되는 바람에 미국에 땅 한 평 갖고 있지 않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경제적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규제완화를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는 경제성장의 과실이 아래로 확산된다는 적하효과를 보여주지 못했고 효율성에도 한계를 드러냈다. 투자은행의 돈벌이가 사회적으로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났고 국민경제 규모에 비해 금융산업의 비중이 너무 크면 큰 위험을 겪을 수 있다는 점도 영국과 아이슬란드가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에서 금융허브 정책이 더디게 진척된 것이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린스펀이 시장의 힘을 확신했던 자신의 세계관이 틀렸다고 의회청문회에서 인정한 사건은 이런 일련의 흐름을 함축적으로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다고 앞으로 10년은 지금과는 아주 다른 세상이 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 사람들은 상황이 호전되면 과거 실수로부터 얻은 교훈을 쉽게 잊는 경향이 있고 이론과 세계관은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바뀌기 어려운 속성이 있다.
그리고 이 보다 중요한 점은 도그마의 문제가 그 반대논리의 도그마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 세계화의 부작용에 대한 답이 될 수 없고 시장이 정부보다 효율적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규제의 적절성은 개별적 사안에 따라 다르므로 추상적인 슬로건으로 판단할 일이 아니며 금융산업 역시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발전의 여지가 많은 점을 부인하기 힘들다.
그러나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변화는 불가피해 보이는데 변화에 대처하는 방식이 앞으로의 10년을 밝게 만들 수도 있고 어둡게 만들 수도 있다. 유효성이 반증된 모델을 고집하면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고, 지난 10년과 정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 답이 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하다.
개별적으로 규제의 필요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과 미국 중심의 1극 체제가 점점 약화되고 기후와 금융위기처럼 전세계적인 협력이 필요한 사안이 증가하는 것을 보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지만 지금까지 경험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글로벌한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