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신정 (인천대 국문과 교수)
[경인일보=]시인 백석(白石·1912~1995)은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1930년 '조선일보'로 등단해 시집 '사슴'의 독창적인 세계로 주목을 받았다. 동경 청산학원에서 영문학을 수학하였고 귀국후 '조선일보' 편집부에서 일하며 시작(詩作)을 병행한 장안의 '모던 보이'였다. 그러던 그가 1930년대 말 돌연, 번듯한 직장을 사직하고 북만주를 떠도는 유랑의 길을 시작한다. 측량보조원, 측량서기, 소작인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생활을 연명했던 듯하다.

일제 말기, 안정된 직장, 사랑하는 가족과 애인, 벗들을 뒤로 하고, 타관(他官)으로 떠난 시인의 심경을 온전히 헤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시인 특유의 감성이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고뇌, 또는 봉건적 유습과 신문물 사이의 갈등, 청춘의 이상과 좌절 등을 좀더 예민하게 경험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짐작해볼 뿐이다.

북만주를 유랑하던 시절, 어느 때던가 백석은 홀로 새해를 맞이하게 된다. 시 '두보(杜甫)나 이백(李白) 같이'는 타향에서 쓸쓸히 새해를 맞이하는 심경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

'오늘 고향의 내 집에 있는다면 / 새 옷을 입고 새 신도 신고 떡과 고기도 억병 먹고 / 일가 친척들과 서로 모여 즐거이 웃음으로 지날 것이련만 / 나는 오늘 때묻은 입든 옷에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 혼자 외로이 앉어 이것저것 쓸쓸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 쓸쓸함을 홀로 견디기 어려웠던 백석은 고향의 흔적을 찾아나선다. '먼 외진 거리에 한고향 사람의 조그마한 가업집'을 찾아 '그 맛스러운 떡국이라도 한 그릇 사먹으리라' 마음을 먹는다.

미세한 사물의 그림자와 사람의 마음까지도 헤아리는 백석의 깊이있는 시선은 여기서 빛을 발한다. '떡국'을 '사먹'는 백석은 결코 자신의 처량한 신세에 빠져들지만은 않는다. 그가 돌아보는 것은 자신의 상황이 아니라, 자신처럼 타향에서 명절을 맞이할 다른 사람들의 딱한 처지다. 옛날, '이 나라'의 시인 두보나 이백이 타관을 떠돌 때, 그들의 명절 음식 '원소(元宵)'를 맛보며 위안을 얻었던 것처럼, 타관을 떠도는 이방인들의 쓸쓸한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이다.

70여년 전, 북만주에서 홀로 명절을 보냈던 시인 백석처럼, 오늘 우리 곁에도 '타관'에서 쓸쓸히 새해를 맞이한 많은 이방인들이 있다.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정은 각자 다르겠지만, 그들도 시인 백석처럼, 새해를 맞아 '어느 한고향 사람의 주막이나 반관(飯館)을 찾아 가서' 각자의 명절 음식을 맛보며 향수를 달래고 있을지 모른다. 혹은 그들 고유의 명절 음식이 아니라 떡국을 강요하는 사람들 앞에서 더욱 쓸쓸하고 힘겨운 새해맞이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한국은 현재 130만명의 이주민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유엔미래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국제결혼율은 10%를 넘어서고 있으며, 2050년에는 이민자와 그의 자녀들의 수가 전체 인구의 21.3%에 달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 결혼이민자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 유학생, 혼혈인 그리고 재외한국인의 수가 더욱 급증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고향을 떠나와 타향에서 명절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수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타향살이를 하는 그들이 앞으로도 계속 한국 사회를 '타관'으로 느끼게 된다면, 다문화 사회로서 한국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 시인 백석이 그러했던 것처럼, 타향살이의 어려움을 헤아리는 마음, 그리고 각기 다른 이방인들의 고유한 '맛'과 습속을 헤아리는 마음만이 오늘 우리에게 이방인들, 아니 또 다른 우리들과의 행복한 공생(共生)을 가능하게 하지 않을까. 타관에서 원소나 떡국을 먹는 사람들, 혹은 각자의 설빔을 입고 명절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