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여러 갈등의 표출은 매우 당연한 현상이라 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사회가 분열된다면 이는 아주 불행한 일이다. 갈등의 표출이 서로에게 불행한 결과를 낳지 않도록 우리 모두 힘써야 할 시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는 두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관리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일단 갈등이 발생한다면 그것을 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시스템으로는 사법기관과 같이 형식성이 높고, 강제력이 있는 것에서부터 이해 당사자간의 협의체와 같이 형식성이 낮고, 상호신뢰에 기초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가 있을 수 있다. 갈등의 종류와 정도에 따라 그에 적합한 갈등 조정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방지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갈등관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갈등 당사자들이 신뢰하고 수긍할 수 있는 사회적 기준을 만들어 나가야 하며, 동시에 갈등관리시스템과 그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기준을 충분히 담보하려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만약 사법기관 또는 갈등조정 협의체가 합당한 사회적 기준을 벗어나 임의로 조정을 시도한다면 갈등의 해결은커녕 또 다른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소통과 배려의 힘을 기르는 교육을 하자는 것이다. 개인이나 집단간 갈등과 불화를 낳는 가장 큰 원인중 하나는 상호소통, 이해, 배려의 부족 때문이다. 가정에서 부부가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지 않을 때 갈등이 발생하고, 그것을 해소하지 못한 채 누적시키면 극단적인 결과에 이를 수 있다. 또 기업주와 노동자가 서로를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사리사욕만을 추구한다면 이는 결국 공멸의 타격을 자초하는 셈이 되고 만다. 사회가 다원화로 갈수록 개인간, 집단간 소통, 이해, 배려의 필요성과 방법에 대한 교육은 더욱 절실해진다.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경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심리적 경계는 다양하다. 계층, 직업, 지역 등과 같이 사회 문화적인 것도 있고 성(性), 신체, 성격 등과 같이 생리적·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도시지역에 살면서 대기업을 운영하고 있다면, 도시라는 지역, 기업가라는 직업, 상층이라는 계층적 지위 등이 그 사람의 심리적 경계를 형성하게 된다. 또한 그가 건강한 신체와 외향적 성격의 남성이라면 건강하고 외향적이라는 신체적·성격적 특성과 남성이라는 성적 지위가 그 사람의 심리적 경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유유상종의 경향이 있기 때문에 심리적 경계 안쪽에 있는 사람들끼리 친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서로 더 잘 이해하고 통하게 된다. 반면 심리적 경계 바깥의 존재에 대해서는 잘 모르게 되고, 그래서 오해와 편견이 생기며, 그로 인해 그 존재와 집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되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심리적 경계 안쪽 집단과 그 바깥쪽 집단이 구분된다. 안쪽 집단에서 어떤 문제가 제기되면 쉽게 공감하고 동조하지만, 바깥쪽 집단에서 제기된 문제에 대해서는 공감이 쉽지 않기 때문에 무시하거나 반대하게 된다. 이런 연유로 갈등이 생기게 되고, 소통을 통한 공감이 없기 때문에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기보다는 무시하고 심지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이는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태도의 고착화로 이어지고, 결국 관계의 단절과 사회 분열을 가져오게 된다.
이와 같은 불행한 결과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계층, 직업, 성(性), 지역, 인종, 문화 등 다양한 심리적 경계를 넘나들며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어린 시절부터 길러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심리적 경계 바깥의 존재를 외부자의 시각으로 멀리서 바라보는 교육보다는 가까이 다가가 내부자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교육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