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목동훈·김명래기자]인천의 오래된 동네 '배다리'에서 주민 스스로 지역공동체 의식을 회복하고 정체성을 찾으려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이들 실험의 주체는 '퍼포먼스 반지하'와 '띠앗'이다. 모임의 성격은 좀 다르지만 '동네'와 '사람'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다. 어려운 여건속에서 남이 시도하지 않는 것을 한다는 것도 비슷한 점이다.

■ 동네가 변한다='띠앗'의 지역화폐 '품'은 '게임머니'처럼 인터넷으로 거래할 수 없다. 품을 받는 이와 주는 사람이 서로 만났을 때 품의 실질적 유통이 이뤄진다. 신뢰를 깬 회원은 더이상 품을 사용하기 어려운 구조로 돼있다.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서 품을 활용하는 상점은 박 의상실과 책쉼터 '나비날다' 2곳이다. 띠앗 회원들은 품을 사용해 의상실에서 옷을 고치고, 나비날다에서 차를 마신다. 심지어 품으로 가게 운영 아이디어를 구하기도 했다. 품을 얻으려면 남을 도와야 한다.

동네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최연경(동구 송림동)씨는 '현대 사회속에서 주민들이 서로 정을 나누며 활동을 하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지만 띠앗 활동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띠앗 소식지에 소감을 남겼다.

처음에는 '퍼포먼스 반지하'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이 냉랭했다. 그러나 주민들과 자주 만나고 함께 교육·환경개선 사업을 벌이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 민운기 스페이스빔 대표가 지역화폐 '품'과 자신의 띠앗 통장을 보여주고 있다. 통장 잔액은 130품이 넘었다. /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

■ 주민들, '주체'가 되다=동네는 행정기관의 손길이 충분히 미치지 않는 곳이다. '동네자치'라는 행정용어는 있다. 지역사회에 구성된 조직이 동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벌이는 활동이다. 그러나 주로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관(官)과 함께 벌이는 활동에 그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일회성·전시성 행사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동네자치'는 주민들의 참여가 꼭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퍼포먼스 반지하'와 '띠앗'의 활동이 주목받는다. 이들 모임은 동네를 가꾸려고온 '이방인'이 아닌 '주민'으로 불리기를 바란다. 의도를 갖고 활동하는 단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퍼포먼스 반지하'의 정정석씨는 "다른 의도나 계기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민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며 "정체성은 주민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띠앗' 회원으로 가입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절차가 있다. '도움줄 수 있는 것'과 '도움받고자 하는 것'을 신청서에 적어야 한다. 민운기 대표는 "이 단계에서 많은 회원들은 내가 잘 하는 것이 무엇이고,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고 했다.

▲ 반지하 활동가들이 마을 환경 개선을 위한 목공작업을 벌이고 있다. /퍼포먼스 반지하 제공

■ 풀어야 할 과제=배다리 주민 참여 비율을 높이는 게 '띠앗'의 과제다. '배다리 공동체 복원'이라는 목표를 이루려면 주민들이 품을 활발하게 이용해야 한다. 현재는 띠앗 회원 중 주민 비율은 20~30%에 불과하다. 또 식당, 병원 등 다양한 가맹점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박용남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은 "띠앗의 활동이 활성화되면 배다리 일대의 공동체 복원은 물론 연대 경제 시스템도 한층 강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퍼포먼스 반지하'는 요즘 딜레마에 빠져 있다. 기관이나 단체·기업의 후원을 받기는 싫고, 스스로 돈을 벌어 운영하자니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지경씨는 "동네를 벗어나면 사회가 있어 가족관계 등 포괄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며 "운영·활동비 마련이 가장 고민이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기관의 지원을 받으면 그들의 잣대에 맞춰 평가를 받아야 한다"며 "활동에 걸림돌이 되고 결국 자본에 의존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작업·교육장을 언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지도 모른다. 재개발 예정지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2003~2004년 활동했던 송림동 동네에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