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진현 (인천민예총 정책위원장)
[경인일보=]'시민'이란 단어가 문학작품의 제목으로 쓰여 주목을 받은 것은 1949년 김경린, 박인환, 임호권, 김수영, 양병식 5인이 공동으로 낸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 처음인 듯하다. 이들은 일본어를 국어로 칭하던 청소년기를 보냈기에 전통적인 한국어 시어감각에는 익숙지 못하였으나 국권 상실이나 친일, 분단에 대한 죄책감 없이 되찾은 국토, 되찾은 도시, 되찾은 언어가 주는 기쁨을 자유로이 만끽하였다. 허름하고 화려하고를 떠나 처음으로 도시의 공간을 자신들의 장소로 재편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30년대에도 이미 일군의 모더니즘 작가들이 새로운 도시 풍경을 자신들의 세계로 호명하면서 새로운 언어감각을 선보인 바 있었지만 이들은 국권상실시기, 주권이 제약되어 끝없이 지배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였다. 이들 또한 복숭아꽃, 살구꽃 핀 어느 먼 시골이 아니라 잘 정돈된 시가지, 높은 건물과 새로운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근대 도시에서 태어나, 물소리 새소리보다 전차소리, 자동차 경적소리에 친숙하고 흥미를 느끼며 성장했지만 그 도시, 그 거리에는 늘 조선인을 소외시키고 우물쭈물 경원하게 만드는 일본인들이 진짜 주인처럼 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방이 되고 나서도 전시대에 책임이 있는 기성세대는 민족과 인민의 이름으로 논쟁과 분란을 겪어야만 했지만 발랄한 이 젊은이들은 공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의 첫 번째 시, 김경린의 '파장처럼'에서 전쟁조차 '시름없는 여파를 나의 뜰앞에 남기고 지나갔다'고 가볍게 넘어서면서 전시대의 것을 '낡아빠진 전통'으로 규정하고 마음껏 조소하면서 새로운 도시의 주인이 되어 함께 목청껏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의 시가 대단히 뛰어났던 것은 아니다. 앞서 지적하였듯이 그들은 일본어가 국어이던 시기에 학교를 다녔고 천황과 전쟁의 이념에 총동원되었으니 공부가 출중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한국어 표현은 어눌하고 시어는 생경하며 모호한 지시어와 불필요한 개념이 남발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자유분방한 행동은 그 시기를 윤택하게 만든 중요한 문화자산임에 분명하다.

도시의 주인, '시민'이란 본래 전통이니 위계와는 거리를 지니고 태어났다. 지엄한 신분사회이던 봉건귀족사회에서 이탈하여 자력으로 재산을 모으고 새로운 생활을 창조한 이들을 부르주아(bourgeois)라고 했으니 이들은 부르그(burg), 즉 새로운 시가지와 도시의 주민을 의미하였다. 이들은 전통적인 장원이나 생산지 농촌을 떠나 자신들의 공간을 창조하고 이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주인이었다.

한 도시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골목골목을 지나 만들어지는 골목 지름길은 여행객은 오히려 더 먼 것 같이 느끼지만 동네사람인 우리는 한결 가깝다는 것을 안다. 깔끔하고 편안하기로는 등나무집이 최고요 겉보기엔 허름해도 음식맛 좋고 인심 후하기로는 은행나무집이 최고라는 것을 동네사람들은 다 안다. 쌀집 아저씨가 퉁명스러워도 곤란한 이웃을 보면 그냥 넘기지 않는 속정 깊고 부지런한 사람인 것을 안다. 그 언덕배기 보도블록은 새것이지만 너무 미끄러워 눈내린 뒤에는 넘어지기 쉽고 그래서 오히려 차도로 지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우리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좁고 숨겨진 길과 소박해도 좋은 사람들 곁에는 늘 지나는 사람, 모여드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도시의 주인으로서 '시민'이란 말이 행정단위 '시'의 주민쯤으로 쓰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주인인 시민이 어쩐지 행정의 대상으로 국한되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그러했듯, 주인이 따로 있는 도시에서는 시민이 성장하지 않는다.

올해는 지방선거가 있는 해이다. 도시의 주인이기 위해서는 도시를 잘 알아야한다. 그 으뜸은 우리가 사는 이 도시에서 우리가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아는 일일 것이요 두 번째로는 우리가 아는 이것을 함께 할 일꾼을 선출하는 일이다. 특히 정당이니 학벌이니 보매 번듯한 외관에 휘둘리지 않을 일이다. 새해에는 우리가 주인인 도시에서 마음껏 합창을 부를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