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조영상기자]왜 '성광하'일까. 정부의 지방행정구역 통합 추진 방침 이후 많은 지자체들이 자율통합에 나섰지만 가시권에 접어든 것은 마산·창원·진해에 이어 성광하가 두번째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3개시가 통합에 합의하기까지에는 길게는 2천년, 짧게는 1천여년간 이어온 이들 시의 역사적 문화적 동질성이 그 바탕이 된다.

이들 3개시의 인연은 BC6년 백제 온조왕 시절 도읍을 광주군 서부면(현 하남시 춘궁동 사거리 일대)으로 옮기고 그 이름을 '하남위례성'으로 불렀던 것이 시초다. 현재 개발이 진행중인 위례신도시의 이름도 여기서 비롯된다.

고려 태조때인 940년 '광주'로 개칭한 이후, 성종때는 '광주목', 1577년 명종때는 '광주부'로 불렸다.

이후 임진왜란 시절 남한산성 인근인 광주시 경안동으로 관청을 옮기면서 1907년(고종44년)부터 지금의 '광주군'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광주군 관할이던 대왕면과 낙생면, 그리고 돌마면과 중부면 일부가 분리되면서 지난 1973년 1월 성남시가 탄생했고, 이어 동부읍과 서부면, 중부면 일부가 1989년 1월1일자로 하남시로 분리, 승격하게 된다.

남한산성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성남'으로 , 백제도성을 하남 위례성으로 불렀다고 해서 '하남'이라고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것도 그 출발과 뿌리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현재 성남권 원주민들의 생활권도 이 지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리적 특성인 탓인지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같은 학군으로 묶여져 직장 동료간 선후배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만 서울 등지로부터 인구가 유입된 성남 분당과 판교지역 주민들은 상대적으로 '이질감'을 나타내고 있다. 성남시의회의 통합 의결 과정에서 나타난 진통도 분당지역의 반대 여론이 한 축을 담당했다.

서울문화예술대학 오순제 교수는 "예로부터 성남권 뿐만 아니라 지금의 송파와 잠실, 강남 양재지역도 같은 광주였다"며 "현재 판교지역은 이지역 군량미를 확보하기 위한 '둔전(屯田)'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