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대학생 자녀를 둔 서민학부모들에겐 가뭄의 단비만큼이나 반갑다. 외환위기 이후 역대 정부들은 국민총생산이나 수출량, 경상수지 등 각종 거시지표 발표 때마다 이구동성으로 '사상최고'를 운운하며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들먹였으나 그 와중에서 서민경제는 간단없이 무너져 내렸다. 글로벌금융위기는 설상가상이었다. 전대미문의 경제적 재앙에 대응한답시고 기업들이 서둘러 긴축경영을 감행한 탓이다. 유통대기업들의 공세로 고전하던 재래시장 및 슈퍼, 빵집 등 대부분의 영세자영업자들은 기습불황에 따른 수요부진이 겹쳐 빈사지경이며 직장인들은 몇 년째 계속된 임금동결에다 심지어 감봉도 비일비재한데 장바구니물가까지 가세해서 서민가계를 압박하고 있으니 말이다.
주목되는 것은 목하 대학생 자녀를 둔 가장들의 절대다수가 은퇴를 코앞에 둔 베이비부머(1955~63년생)들이란 점이다. 생산인구 점감에다 베이비붐세대의 무더기퇴진에 따른 생산공백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당장 퇴직 후의 삶이 더 큰 문제이다. 평생토록 열심히 일했으나 주거마련 내지는 자녀들 교육비지출 등으로 벌이의 대부분을 소진한 때문이다. 적자가계도 수두룩해 노후대책준비는 사치일 뿐이다. 지난해 12월 현재 베이비부머는 총 712만명인데 이중 국민연금 가입대상자수는 450만명이니 4명중 1명 정도는 연금수혜대상에서 아예 배제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개인연금을 소액이라도 가입한 가구는 10가구 중 3가구에도 못미치고 퇴직연금의 경우는 훨씬 열악하다. 베이비붐세대의 상당수는 은퇴 직후부터 노인빈곤층에 편입되도록 예비(豫備)되어 있다. 근래들어 자녀들의 부모공양에 대한 의무감이 엷어지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통계청의 '2006 사회통계조사결과'에 따르면 15세 이상 응답자들 중 부모의 노후생계를 가족이 돌봐야 한다는 견해는 63.4%로 1998년의 89.9%, 2002년의 70.7%에서 계속 줄고 있는 것이다. 부모공양에 대한 젊은이들의 의식변화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나 효(孝)에 대한 가치관의 빠른 붕괴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제고와 의술(醫術)의 발달로 '백세해로'시대가 임박했음을 감안할 때 우려가 크다.
지난해 노인인구는 500만명을 넘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0.3%로 높아졌다. 또한 노인 소득빈곤율은 45.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노인 100명 중 45명이 중위소득의 절반이 안되는 소득으로 살아가는 사실상의 절대빈곤층이라는 뜻이다. 이 정도만으로도 사회적비용 조달이 한걱정인데 노후준비 없는 베이비부머들까지 무더기로 가세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2005년 기준 75세 이상 우리나라 노인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평균보다 무려 8.3배 이상이나 높은 실정인데 지금과 같은 추세대로라면 향후 이 비율은 더 높아질 것이 확실해 보인다.
맹목적인 자식사랑은 자신의 노후는 물론 자녀의 행복도 담보되지 않는다.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생산가능인구가 현재 6.8명에서 2020년에는 4.6명으로 축소될 것이란 전망치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사회 첫출발을 빚쟁이로 시작하는 대학생들이 딱하기는 하나 학자금을 스스로 조달해야 하는 유럽이나 미국, 일본의 대학생들에 비하면 얼마나 행운인가. 무한봉사를 최고의 덕목으로 간주하는 부모들의 자녀관 변화만이 유효한 대안이다. 취업후 학자금상환제 도입을 베이비부머들의 노후대비 준비계기로 삼아야할 것이다. 아울러 대학생들이 주경야독을 통한 건강한 사회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사회적 배려도 병행할 것을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