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조금 낀 차가운 날씨이긴 해도 그 자리에 오가다 들른 사람들이나 모임을 주선한 사람들이나 다 같이 얼굴에는 밝고 푸근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 따뜻한 얼굴, 얼굴들이 모여 넓은 행궁광장을 모닥불을 피운 듯이 훈훈하게 데웠다. 그날 행사의 사연을 알고 보면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 같다.
행사는 수원 화성을 사랑하는 모임인 '화성연구회' 가 주선하였으며, 행궁 주변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독거노인들에게 쌀을 드리면서 화성의 소중함을 일깨우자고 하였다. 소용되는 돈은 바자회를 열어 마련키로 하였다. 바자회에 출품된 물건은 회원들의 손때와 숨결이 밴 것으로 값으로 치면 몇 만원 안팎의 그야말로 신변잡화였다.
예를 들면 아침까지 매고 다니던 넥타이하며, 못 입어 쟁여두었던 스웨터나 바지를 기증하였는가 하면, 그림 그리는 이는 화성을 소재로 한 그림을, 글씨와 사진하는 이는 글씨족자와 사진작품을, 시 쓰는 이는 시상을 다듬던 산수화 족자를, 향토사학과 문학을 전공한 이는 광교산을 노래한 자작시가 들어 있는 도자항아리를, 문화재 장인은 문짝 등 소품을 내놓았다. 그밖에도 회원 모두가 빠질세라 앞 다투어 물건을 내놓았으며 하다못해 아껴두었던 술까지 들고 나와 바자회에 나온 물건이 줄잡아 300여점을 웃돌았다.
물건은 대부분 회원들이 샀다. 옛 주인의 추억이 담긴 물건은 새 주인이 넘겨받는 순간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 마련이다. 작은 물건이 오가며 회원 간에 더욱 두터운 정을 흐르게 한 것이다. 아마 떡메를 친 회원 중에는 그 때 산 스웨터나 바지를 자랑스레 입고 나온 이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싸면 몇 천원, 비싸야 2만원 정도의 물건이 다 팔려서 모인 돈이 몇 백만원이 넘었다.
이러한 연유가 있는 쌀이고 인절미를 나누어 먹는 행사이니 보통 있는 어느 이웃돕기 행사와는 달리, 받는 사람, 주는 사람, 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 다 같이 푸근하고 즐거웠던 듯하다. '화성사랑'이 무언가! 정조의 위민정신은 인인화락(人人和樂)이 아니던가!
화성연구회 이야기를 조금 해보기로 하자. 이 모임은 수원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자마자 뜻 맞는 몇몇이서 만든 '화성사랑 모임'이 모태이고 뒤이어 화성의 역사, 도시및 건축, 문학 등 분야에서 관심 갖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서 사단 법인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언 10년을 넘겨 이제는 회원이 200여명을 헤아리는 모임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모임은 활발한 활동의 결과로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문화유산상'을 받았고 작년에는 전국 문화재지킴이 대회를 수원에서 개최하였다. 방문교사 교육, 화성 바로알기 시민강좌, '알기 쉬운 화성길라잡이' 책 발간 등과 국내·외 성곽비교답사 등 학술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으며 성신사와 여민각 복원의 단초도 제공했다.
매월 정례모임을 갖고 있으며 밥값 포함, 기껏 1만원의 추렴으로 뒤풀이 재미도 쏠쏠하다. 회원의 길흉사에 서로 빠짐없이 들여다보며 그렇게 10여년이 흐르는 사이 정으로 얽힌 끈끈한 모임이 되어 버렸다. 2월 초에는 회원의 박사학위 취득 축하번개모임이 나혜석 거리에서 있을 것이다. 당연히 학위논문의 주제는 화성관련일 것이다. 제백사하고 가봐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