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오동환 객원논설위원]스위스가 2005년 6월 5일 실시한 국민투표는 동성(同性) 커플에 대한 권리 인정 여부였고 결과는 58% 찬성의 '인정'이었다. 정통 가톨릭 국가로 이혼과 낙태가 금지돼 있는 아일랜드의 이혼합법화가 1986년의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자 재차 실시한 것은 그 7년 뒤였고 총포 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연간 약 4만 명에 이르는 브라질의 총포판매금지에 관한 국민투표일은 2005년 10월 23일이었다. 유권자 1억600만이 7일간 치러낸 거창한 국민투표도 있었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을 신임하는가, 대통령 조기선거는 필요한가, 정부가 추진해온 사회·경제정책에 동의하는가 등을 묻는 러시아연방의 1993년 4월 25일 국민투표였고 7일간의 투표일정은 투표소까지 나오기 어려운 시베리아 등 오지 주민을 위한 배려였다.

국민투표란 고대 로마 때부터 민회(民會)에서 시행했지만 전체 국민의 본격적인 국민투표는 1852년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의 경우가 처음이었다. 쿠데타로 임기 10년의 대통령이 되자 국민투표로 추인받은 뒤 스스로를 나폴레옹3세라 불렀던 것이다. 그런 프랑스는 1945~80년 간 무려 18번이나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69년엔 드골이 국민투표 패배로 하야(下野)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독일도 1934년 히틀러가 국민투표로 총통에 취임했고 55년 자르(Saar)의 서유럽화(化)도 국민투표로 결정했다. 잦을 땐 월 1회의 만능 국민투표 국가라면 단연 스위스가 꼽힌다. 공공택시 존폐여부, 알프스산맥에 무개(無蓋)화차가 통과토록 터널 2개를 뚫을까말까 여부 따위였다.

박정희 정권 때의 세 차례 등 6차례의 이 나라 국민투표는 찬성 일색이었다. 한데 영어로는 레퍼런덤(referendum)이나 플레비사이트(plebiscite)라 일컫는 '국민투표'라는 용어 자체가 좀 우습다. 그 어떤 선거든 국민투표가 아닌 '비(非)국민투표'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의원의 국민투표 '왈가'에 친박계와 야당이 '왈부'하고 나섰다. 세종시 문제란 솔로몬왕이 지혜주머니를 메고 재림해도 도무지 영 해법이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