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 강의동이 완공되고 얼마 안 돼 일이 생겼다. 건물 지하 3층에서 빗소리가 났던 것이다. 결국 이 사실이 총장에게 보고 되었고, 총장은 며칠을 지켜보다 건축가에게 연락을 했다.
"새로 진 건물이 비가 오면 지하 홀까지 빗소리가 들리는데 어디 잘못된 것은 아닌가요?"
그러자 돌아온 답변은 짤막했다.
"비오는 날 지하층에서는 빗소리를 들으면 안 되나요."
비오는 날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지하에서 듣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일본 특유의 섬세함과 창작 중시의 독창주의를 엿보게 해준다. 밖의 빗소리가 지하층까지 그대로 전해지도록 한 설계기술도 그러하거니와 그 발상도 참 독특하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세계 유아용품 선두사 일본 피존사를 일으킨 나카다 유우이치(仲田祐一)씨의 일화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한 후 그는 산모가 있는 곳이라면 모조리 찾아 다녔다. 일본 산모들의 젖꼭지 모양을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관찰이라는 것이 단순히 사진을 찍거나, 젖꼭지 모양을 살피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자기가 직접 산모들의 젖꼭지를 물어보고 그 감촉과 강도 등을 일일이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실제와 똑같은 분유꼭지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물론 산모들이 이를 좋아할 턱이 만무였다. 문전박대는 예사였고, 때로는 심한 욕까지 들었다. 그래도 꿋꿋이 6년 동안을 계속했다. 그 결과, 그는 최초로 실제 엄마의 것과 같은 분유꼭지를 개발해 냈다.
짤막한 두 이야기지만, 둘러보면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쌓여 지금까지 일본을 이끌어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철두철미한 준비와 혼을 담은 제조 그리고 현장중심의 끝없는 개량, 개선이 일본의 기업력(企業力)이자 자부심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의 근성이 최근 점점 옅어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그래서일까? 요사이 일본의 자랑이던 일본항공이 무너져 법정관리를 신청한 데 이어 일본의 간판기업 도요타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벌어진 도요타자동차의 대규모 리콜사태가 일파만파다. 미국은 도요타 청문회까지 계획 중이다. 이래저래 세계 1위의 자동차회사 도요타의 자존심이 안쓰러울 정도로 꺾이고 있다. 분명 이번 도요타 사태는 도요타뿐만 아니라 일본의 위기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만으로 마치 일본이 추락하고 곧 가라앉을 것처럼 보는 것은 정령 잘못된 시각이다. 간간이 이런 유의 일들이 벌어지면 다소 들뜨고 약간씩 오버하는 우리를 보게 된다. 전 세계에서 일본을 무시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고, 미국을 무시하는 나라는 북한밖에 없다는 우스개 아닌 우스갯소리가 있다. 일본을 무턱대고 낮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간 나름 강대국으로 자리잡은 힘을 일본은 분명히 가지고 있다.
위기는 누구에게나 늘 온다. 중요한 것은 그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다. 이번 도요타 사태로 우리가 얻게 될 단기적 반사이익만을 계산치 말고 좀 더 냉철하게 일본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금 도요타가 겪고 있는 위기의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 이에 대해 일본정부와 기업은 어떻게 움직이며 대처하고 있는지 세심히 관찰해 우리에게 위기가 왔을 때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 일본기업을 이길 수 있고, 일본경제를 앞지를 힘을 축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