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태순 (변호사)
[경인일보=]중국의 전국시대를 마무리하면서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 국력의 근저에는 법가(法家)사상이 있었다. 진시황제 시절에 승상으로 있던 이사(李斯)와 더불어 순자(筍子)에게 배워 법가사상을 대성한 한비(韓非)가 유작으로 남긴 '한비자'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물이 불을 제압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나 물과 불 사이에 가마솥이 있으면 불이 물을 증발시켜버린다. 법이 무도한 사람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나 법과 무도한 사람 사이에서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가마솥과 같은 역할을 하면 법은 증발되어 버릴 것이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서 법이 세워지기도 하고 증발되기도 한다는 것을 2천년도 훨씬 넘은 시절에 한비는 간파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서 적지 않게 감탄하였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가마솥과 같이 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의도적으로 가마솥이 되는 경우이고, 둘째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마솥이 되는 경우이다.

경찰관이 도박 현장을 적발하고도 판돈을 챙기면서 도박의 규모를 줄여주거나 불법오락실 단속 정보를 미리 알려주는 것이 전자의 예라고 한다면, 마작을 어떻게 하는지 전혀 몰라서 마작 도박을 한 사람들의 변명에 휘둘려 제대로 조사하지도 판단하지도 못하는 것이 후자의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검사로 재직하던 때에 마작 도박으로 구속된 피의자를 수사하던 후배 여검사가 자신은 마작을 할 줄 몰라 피의자의 변명이 맞는지 판단을 하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조언을 구하는 것을 보고 검사를 제대로 하려면 참 여러 가지를 다 해보아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래서 사법연수원 교수로 있으면서 수료여행을 갔을 때에는 일부러 여자 사법연수생들을 앉혀 놓고 마작이나 카드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런데, 검사나 판사가 자신만의 함정에 빠져 독선적인 결정이나 판단을 하는 경우 또한 법을 있는 그대로 실현되지 못하게 한다는 면에서 후자의 예이다.

법이라는 것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국민들의 합의의 산물이기 때문에 법을 법대로 집행하기 위하여서는 그 해석도 국민들 상식에 맞도록 해야 하는 것이며 그것이 법집행하는 사람들이 법을 해석하는 태도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가마솥이 되어 법을 증발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법을 집행하기 위한 인적 자원 및 물적 자원이 현실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점 또한 가마솥 역할을 하기도 한다. 충분한 예산과 인원을 법을 집행하는 부분에 쏟을 수 있다면 검사나 판사들이 보다 많은 시간을 한 사건에 쏟아 진실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도 모르나 요즘과 같이 많은 사건을 부족한 시간 내에 해결하여야 하는 환경에서는 진실에 대한 접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하여 법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하는 결과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국가 전체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관점에서 보면 부족한 자원을 채우는 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법을 집행하는 부분 말고도 국가 발전을 위하여 챙겨야 하는 중요한 부분들이 더욱 많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가마솥이 되는 경우는 엄격하게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므로 논외로 하더라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마솥이 되는 경우를 최대한 줄이기 위하여는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 스스로 사회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자만과 독선에 빠지지 않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라는 법언은 9명의 범인을 놓치는 경우가 있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처벌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이는 결국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 실수할 수밖에 없다는 자각에 기초한 것이다. 따라서 의심스러울 때에는 국민의 상식으로 판단하라는 말도 같은 이유에서 타당한 표현이다. 요즘 논란이 되는 사건들의 결정과 판결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