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우영 ((재)글로벌에듀·인천영어마을이사장)
[경인일보=]내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1960년대에는 '나머지공부'라는 게 있었다. 성적이 비교적 낮은 학생들을 방과 후 학교에 붙잡아놓고 선생님 또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학습적 도움을 주는 제도였다. 당시 나머지공부를 하던 학생에게는 고욕일 수 있겠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훈훈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나머지공부'는 급변하는 사회구조와 그 보다 더 자주 바뀌는 교육시스템으로 인해 언젠가부터 구태의연한 교육방식으로 여겨졌고, 학부모들의 요구와 입맛을 보다 실질적으로 맞춘 사교육이 자연스럽게 그 대안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사교육의 소용돌이 안에서 아이들은 그들만의 순수한 경쟁이 아닌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거주지역과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이미 한차례 휘둘린 불공평한 경쟁을 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과열된 사교육 풍토를 진정시키기 위해 정부는 방과후학교라는 제도를 추진하였다. '사회 양극화 완화'와 '사교육비 경감'을 필두로 한 방과후학교는 초등학교 저학년들의 방과 후 보육 및 교육 욕구 해소와 고학년의 특기적성개발을 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도입을 목표로 시작되었다. 대개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초등학교 저학년에게는 기초교육과 보육을, 고학년에게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한 특기적성개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초등학교에서 운영하고 있는 현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방과후학교 내에 성적이 저조한 학생들을 위한 학습능력향상 프로그램을 추가시키자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성적이 현저히 뒤처진 아이들이 중학교에 가서 그 성적을 끌어올리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방과후학교를 통해 성적이 저조한 학생들에게 학습의 기회를 한 번 더 주어 그들의 학습능력을 어느 정도 끌어올려줌으로써 그들이 중학교에 진학할 때 다른 학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국가 경제력이 결코 국민 개개인의 경제력이 될 수 없다는 노암 촘스키의 말처럼, 아무리 우리나라가 과거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다 하더라도 사회양극화는 이미 교육에도 깊이 뿌리 내렸다. 경제적 여건이 안돼 사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그 혜택을 누린 아이들에게 치이는 일이 더 이상 발생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초등교육에서만큼은 누구 하나 현저히 뒤떨어지지 않고 모두가 중등교육에 대한 준비를 잘 할 수 있게 지원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학교가 전폭적인 결단과 지원을 해야만 가능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앞으로의 방과후학교는 다시 과거의 '나머지공부'의 자세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정부는 경제적으로 힘든 학생들에게 방과후학교 수업료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고, 학교는 이 방과후학교를 통하여 성적이 뒤떨어지는 학생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음으로써 이들 모두가 학업에 대한 자신감과 용기를 얻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또한 학부모들의 참여도 필요하다. 학부모 개개인의 전공을 방과후학교의 성적향상 프로그램뿐 아닌 특기적성개발 교육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이 성적이 뒤떨어지는 동급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는 것 역시 방과후학교 성적향상 프로그램의 일환이 될 수 있다. 성적이 저조한 학생은 성적이 높은 학생들에게 배우고, 이로 인하여 가르쳐주는 학생들은 한 번 더 복습하게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 잘 하는 학생이 다른 학생들을 가르쳐줌으로써 무한경쟁을 알기 전에 공생공존의 참의미부터 배우는 것이다. 이는 미래를 이끌고 나아갈 우리아이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이와 같이 방과후학교는 단지 특기적성교육만의 기능뿐 아닌 기존 교과과정에서 충분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학생들의 보완장치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다.

필자가 제안한 학습능력향상 교육이 방과후학교의 일환으로 이른 시일 내에 자리잡고, 이러한 방과후학교가 과거 '나머지공부'의 따뜻함과 시대에 앞선 경쟁력을 두루 갖춘 초등교육의 한 축으로 자리잡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