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구(수원대 경상대학장·객원논설위원)
[경인일보=]백화점 및 대형마트들이 설 특수를 톡톡히 누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한 신세계백화점의 매출액이 무려 39.7%나 증가했으며 롯데백화점은 35.8%, 현대백화점도 22.9%의 신장률을 기록했다. 서민들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1천만원 이상의 선물세트들이 날개돋친 듯이 팔렸단다. 지난해 설 재미를 별로 보지 못했던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들도 양호한 실적을 올렸으며 온라인쇼핑몰의 약진도 두드러졌다. 대형유통업체 및 신업태들이 기대 이상의 호황을 누린 것이다.

수입액이 늘어난 탓에 무역수지가 2개월 연속 적자행진을 지속하는 등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말이 사실인 모양이다. 그러나 재래상권의 경기는 지난해보다 훨씬 못해 보인다. 국내 최대의 전통시장인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등은 썰렁하다 못해 허탈하기까지 했단다. 필자의 눈에 비친 설밑 동네 풍경도 지난해보다 못한 듯했다. 작년만 해도 아파트 경비실마다 선물더미들로 넘쳐나고 택배차량들이 단지 내를 풀 방구리 쥐 드나들듯 했었는데 올해는 별로였다. 단지 앞 슈퍼들에 진열된 선물종류나 물량도 예년에 비해 눈에 띄게 줄었다. 민초들에겐 설 특수 운운이 남의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소비 양극화는 경기회복기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부자들부터 먼저 지갑을 여는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설대목에 확인된 소비양극화를 경기회복기의 과도적 현상으로 치부하는 데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지난해 3분기에는 명목근로소득이 하락, 월평균 가계소득이 최대의 감소를 기록했다. 관련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2004년 이후 처음이다. 작년 1인당 국민소득(GNI)은 1만7천달러로 2005년 수준으로 곤두박질했다. 상품 한 단위를 생산하는데 소요되는 단위노동비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4개국 가운데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지난해 초부터 3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지난 5년간 546개 상장기업들의 매출은 24%나 증가한 반면 직원수는 오히려 2%나 감소한 것도 주목거리이다.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임금삭감 내지는 대량해고 등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공식발표한 실업자수는 88만9천명이나 구직단념자·취업준비생·임시단순근로자 등을 포함한 사실상의 실업자는 408만명으로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17%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국민들의 지갑두께가 점점 얇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원자재가격의 점진적 상승은 설상가상이다. 생산자물가는 지난해 11월이래 3개월 연속 올라 지난 1월에는 1년4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득은 줄어드는데 지출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자녀교육비 지출까지 줄이겠는가.

가계부채가 다시 클로즈업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9월말 현재 실질가계부채는 436조원으로 직전 1년간 실질가처분소득의 약 80%로 이미 경고등이 켜진 상태이다. 계층간 소득격차가 확대되는 가운데 빈곤율이 15%대로 치솟고 가계수지가 적자인 가구의 비율도 점차 늘고 있다. 가계부채발 위기로까지는 번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계소득 감소가 소비를 위축시켜 내수침체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고용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의 함정에 빠져들 개연성마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4분기부터 본격화된 악순환 조짐이 올 들어 한층 뚜렷해지는 추세인 때문이다.

이명박정부 집권 3년차를 맞아 자본의 총공세가 한층 가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점도 걱정이다. 공기업에 인사삭풍이 예고되어 샐러리맨들은 좌불안석인 터에 대기업들은 오는 6월 지방선거 결과와는 무관하게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할 태세이다. 지난 잃어버린 10년을 반추할 때 친기업 정부 등장이란 모처럼의 기회를 지나칠리 없는 탓이다. 전기·가스·버스 등 공공요금의 줄인상도 임박했다. 국내 요인이 아니더라도 중국과 미국 등의 출구전략타령 내지는 남유럽발 재정위기 여파로 원화약세·주가하락·무역수지적자·시장금리인상도 염려된다. 지갑열기는커녕 어렵게 지핀 불씨마저 꺼뜨릴 공산이 크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설이 유효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