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환 (한글문화연대대표·방송인)
[경인일보=]지난해 말 교육과학기술부는 '2009 개정 교육과정' 총론을 통해 초등학교 한자교육 부활을 예고했는데, 찬성하는 이들의 주장은 대략 다음과 같다. 우리말에는 한자어가 많으므로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 한자를 써야 뜻을 가를 수 있다. 한자문화권 삼국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한자를 배워야 한다.

우리말 속에 한자어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한자를 쓰지 않아도 독자들이 이 글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고대 한반도에는 말은 있었지만 표기할 글자가 없었기에 한자를 빌려다 썼다. 토박이말이 한자어로 표기되었으며 한자화 된 말들은 입말로 재생산되었다. 그 결과 토박이말은 한데로 내쳐지고 한자어가 많아졌다.

이런 현상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았기에 세종은 우리 글자를 만들었다.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를 통해 지식의 독점을 막고 문자 독립의 이정표를 세웠다. 한자 문화에 매몰된 사대부들의 방해가 있었지만, 한글은 시나브로 백성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우수성을 입증했다.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글자로서 지식과 정보의 유통을 담당하며 한자에게 내주었던 자리를 서서히 회복했다. 수준 높은 가사문학의 대표작인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속미인곡, 사미인곡, 관동별곡 등이 한글로 쓰였으며, 추사 김정희가 가족들과 주고받은 편지도 한글로 쓰였다.

한글 창제로부터 4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19세기에 이르러 한글의 중요성은 확고부동해졌다. 1894년 고종은 칙령을 통해 한글을 국문으로 선포하였고, 1896년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이 순한글로 발간되었다. 당시 선각자들은 어려운 한자를 버리고 쉬운 한글로 지식을 습득할 것을 역설했다.

한자는 정말 어려운 글자다. 중국 사람들은 평생 세 가지를 못한다는 얘기를 곧잘 하는데 중국 전역을 여행하는 것, 중국 음식을 모두 먹어보는 것, 한자를 모두 배우는 것이 그것이다. 강희자전에 실린 글자만 해도 4만9천자가 넘는다. 중국의 문호 노신은 한자가 망하지 않으면 중국이 망할 것이라며 개탄했다. 결국 중국은 문자개혁을 통해 현재는 간체자를 쓰고 있다.

1948년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었고, 1968년 '한글전용 촉진 7개항'이 발표되었으며 1970년 초등학교와 중학교 국어교과서가 한글전용으로 개편되었다. 1988년에는 한글전용 신문인 한겨레신문이 창간되었으며 오늘날 대부분의 신문이 한글화되었다. 한글을 중시하는 정신이 역사와 삶의 중심에 섰다. 한글은 대한민국의 국자, 교육언어, 생활언어로서 그 역할을 수행함에 부족함이 없다.

새삼스럽게 한자에 매달리는 것은 과거 중국과 한자를 숭배하던 시대로 돌아가는 역사의 퇴행이다. 한·중·일의 교류를 염두에 둔다 해도 외국어 학습 영역에서 중국어와 일본어 교육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것이지 초등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의 처지도 생각해야 한다. 이미 과중한 학업 부담으로 아이들은 혹사당하고 있다. 여기에 어려운 한자까지 더한다는 것은 교육의 탈을 쓴 폭력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초등학교 한자교육이 부활하면 한자 사교육 시장이 준동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초등학교에서는 한글로 우리말글을 충분히 공부하고 한자는 중학교에 가서 하면 된다. 중학교나 그 이상의 과정에서도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하면 된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시라. 한글은 그 우수함으로 대한민국 사회의 발전을 이끌어 왔으며 여전히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