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부분의 주민이 떠나간 채 파손된 빈 집과 각종 쓰레기들이 뒹굴고 있는 가정오거리 도시재생사업(루원시티)지구 내 흉물스런 빈집.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경인일보=임승재·김민재·정운기자]"기자 신분증 먼저 보여주세요."

루원시티(인천 서구 가정오거리 도시재생사업) 사업지구 인근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임명희(38·여)씨는 인터뷰를 마치고 이름을 묻는 기자에게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신분을 확인한 임씨는 그제서야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말해 줬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분위기라서요"라는 게 이유였다. 지난 13일 오후 8시10분. 초저녁 시간이지만, 루원시티 사업지구 일대 인적은 이미 '뚝' 끊긴 상태였다. 거리는 어둡고 적막했다. 주택가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 봤다. 불빛은 희미하게 골목을 비추는 가로등 뿐이었다.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허름한 빈집 앞마당에는 버려진 가재도구와 각종 쓰레기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후미진 빌라 주차장엔 누군가 마시고 간 소주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골목은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루원시티는 전체 가구의 90% 가량 보상 협의가 이뤄진 상태다. 하지만 아직도 이주를 하지 않은 주민들이 2천여명에 달한다.

루원시티 사업지구 인근에는 동우아파트가 있다.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버스 정류장까지 가려면 인적이 드문 공가(空家)지역을 반드시 지나야 한다.

▲ 인천시 서구 가정오거리 도시재생사업(루원시티)에서 제외된 한 아파트 주민들이 텅 빈 상가 앞 버스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오후 9시께 귀가하던 대학생 김민지(22·여)씨는 "매일 어머니가 버스 정류장으로 마중 나온다"며 "버스 정류장은 버스 기다리는 사람 반, 자식들 기다리는 부모 반"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주변이 너무 어둡고 무서워서 밤에는 잘 돌아다니지 않는다"며 "순찰 활동을 강화하는 것도 좋지만 가로등 불빛이 좀더 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골목을 나와 한 시간쯤 걸었을까. 무리지어 순찰을 돌던 경비업체 직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루원시티 개발사업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고용한 사람들이다. 경비업체의 한 직원은 "부산 여중생 사건이 터져서 그런지 주민들이 더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여기는 저녁 8시만 되면 사람 구경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LH에서 고용한 경비업체 직원 50명은 24시간 2교대로 순찰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인원으로 97만2천㎡ 규모의 루원시티 사업지구를 제대로 순찰하기는 쉽지 않다.

경찰도 인력 운용에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서부서 방범순찰대는 지난해 9월부터 1개 소대 25명을 2인 1개조로 나눠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순찰 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 부산 여중생 납치 성폭행 살해사건이 발생한 뒤부터는 오후 9시부터 자정까지 도보 순찰을 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한 쪽에 인력을 집중하면 다른 지역의 치안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진다"고 했다.

인천지역 도시·주거환경정비예정구역은 212곳. 앞으로 루원시티와 같은 빈집 밀집지역이 늘 것으로 예상된다. '제2의 부산 여중생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경찰, 지자체, 사업시행자간 공조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