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권 (경인교육대학교 총장)
[경인일보=]금년 6월에 지방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뿐만 아니라 교육감도 함께 선출하기 때문에 지난 선거와는 그 비중이 같지 않다. 선거는 대표를 뽑아서 국민 또는 주민의 권한을 대표에게 상당 부분 위임하는 것으로,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이 되는 절차이자 제도라 할 수 있다. 선거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민주주의 역시 그 기능과 역할을 바르게 할 수 없음을 익히 보아왔다. 선거 때가 되면 국민과 주민을 주인으로 섬기고 봉사하겠다던 후보자의 자세가 당선 후 돌변하는 많은 경우를 목격해 왔다. 대다수 국민들은 이러한 정치인의 행태와 후진적 정치문화를 비판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일반 국민들의 책임도 없다할 수 없을 것이다. 향후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제도적 개선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민주시민으로서의 성숙된 의식과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러한 제도 개선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성숙된 의식을 가지고 바르게 행동하는 민주시민으로 길러내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적극적 교육을 수행하여 민주주의의 가치와 생활을 내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몇 십년 전에 초중등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배우긴 했지만, 그것은 교과서를 통해서 민주주의의 형태, 선거의 원리, 삼권분립 등 박제화된 지식을 전달받았을 뿐, 정작 학교생활은 민주주의 그 자체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민주적 생활의 핵심원리 가운데 하나는 누군가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다스리는 자치의 원리라 할 수 있다. 학교에서부터 자치의 원리를 체화하는 것이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기성세대에게 우리가 왜 법을 지켜야 하는가를 물어본다면 대다수는 사회의 혼란을 막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옳은 생각이다. 그러나 이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물론이고 군주제 사회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법이 바로 우리가 만든 규칙이기 때문이다. 즉 법은 우리에 의해서 선출되고, 권한을 위임받은 대표가 국회 또는 의회에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간접적으로나마 법을 제정하는 데 참여했다고 보아야 하며, 그런 이유로 법을 지켜야하는 책임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민주사회의 자치의 원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치의 원리를 생활의 방식으로 체화하기 위해서는 학교생활의 경험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학습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관련하여 모 중학교에서 있었던 하나의 사례를 소개한다. 그 학교의 한 담임선생님이 학생 스스로 학급 규칙을 정하도록 하였는데, 학급회의에서 청소당번을 두지 말고 각자 알아서 자기 주변을 깨끗이 하는 것으로 학생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그리하여 청소를 책임지는 청소당번이 없는 상태로 한 달 정도를 생활하였는데, 그 결과 교실은 거대한 쓰레기통처럼 되었다. 학생들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결국 학급회의를 열어서 청소당번을 다시 두는 쪽으로 합의하였다. 아마 담임선생님은 청소당번 없이 각자 알아서 치우자고 하면 결국 교실이 지저분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예견했을 것이다. 그리고 한달 가까이 교실을 지저분한 상태로 유지했으니 다른 선생님이나 교장·교감 선생님의 지적과 질책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교실을 깨끗이 하는 것이 우선적인 교육목표라고 한다면 담임선생님이 직접 청소당번을 지정하고, 청소 여부를 매번 확인함으로써 이를 달성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는 교실은 청결하게 유지할 수 있겠지만,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자치의 원리를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학생들에게 제공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단순히 민주주의에 관한 단편적 지식을 전달하는 곳으로 머물지 않고, 민주적 생활원리를 몸과 마음으로 체득할 수 있는 장으로 거듭난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성숙된 민주시민들이 길러질 것이다. 그리고 국민 개개인이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로 더욱 발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