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한편으로 '은행들, 예금은 쌓여 가는데 돈 굴릴 데가 없다'. 이 말은 최근 언론지상에서 자주 언급되는 기사의 타이틀이다. 참으로 모순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중소기업 자금의 '수요-공급' 구조이다. 마치 노동의 수요자와 공급자가 서로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구인난이 심각한 가운데 실업률은 높은 요즈음의 고용문제와 유사하다.
왜 금융기관 자금의 수급구조가 이렇게 불균형한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금융기관의 자금공급여건 변화를 살펴보면, 개발연대시대 이래 지속되고 있는 중소기업 자금조달 애로문제가 아직까지 완화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의아하게까지 보인다.
왜냐하면 과거와 달리 IMF 외환위기 이후 금융기관에 대한 대기업의 자금수요가 크게 줄었고 금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은행들의 수익성 높은 금융상품 투자가 어려워졌으며, 최근 들어서는 가계부채 문제가 크게 대두되면서 개인대출에 대한 LTV(Loan To Value·주택담보인정비율), DTI(Debt to Income·총부채상환비율) 규제로 가계대출도 축소되거나 둔화될 수밖에 없어, 금융기관들이 자금운용처로 중소기업들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여건변화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애로 문제가 계속 제기되는 것은 중소기업금융 공급기관들이 우량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일부 대출선에 한정하여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중소기업자금 수급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독일의 중소기업금융 공급체계와 최근 우리나라 지역신용보증재단의 성공사례에 비추어 각 중소기업금융 취급기관별로 시장세분화 전략을 모색해봄이 바람직하다.
중소기업 금융이 발달한 독일의 경우 지역 협동조합은행, 슈파르카센(우리의 상호저축은행), 지방은행이 중소기업들과의 지속적인 유대 관계를 통해 중소기업의 자금공급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지역신용보증재단에서는 금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소외 자영업자 등 영세상공인을 대상으로 특례보증을 실시하는 등 그 기관만의 블루오션을 새로이 창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참고하여 필자는 중소기업 금융의 수요자별 시장세분화 전략으로 다음과 같은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정부와 지자체의 각종 정책자금과 기금들은 국가경제의 미래를 이끌어갈 첨단·선도산업분야 위주로 지원해야 한다.
둘째, 신용보증기금은 아직 신용도를 충분히 축적하지 못한 신설기업이나 신용도 열위기업 중심으로 보증 운용하는 한편, 기술신용보증기금은 기술력 평가를 근간으로 하는 진정한 기술신용보증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셋째, 지방은행, 상호저축은행, 신용협동기구는 각각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영업 구역내에서 중소기업자와의 상호 밀접한 유대하에 '관계형 대출'에 치중하면서 특화된 대출시장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중은행들은 정부의 금융지원 정책기관이나 중소형 금융회사와 달리 일반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우대금리 제공 등 대출조건을 두고 서로 경쟁하는 시장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수요자별 시장세분화 전략을 다양한 금융회사들과 정책금융기관들이 기관별 특성에 따라 독자적으로 추진해 나간다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중소기업 자금조달 애로 문제가 완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시장세분화전략 추진으로 자금수요자와 공급자가 상생하는 'Win-Win' 구조가 정착되고 나면 중소기업들은 각각의 수요에 맞는 공급자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고, 금융상품에 차별화를 두기 어려운 금융기관들은 안정적인 자금운용고객을 확보하면서 시장특화를 통해 장기발전 전략을 구사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