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문성호기자]"화성 3·1운동을 주도해 9년여의 옥고를 치른 차희식 선생을 아십니까?"

국가보훈처의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향토 출신 차희식(1870∼1939) 선생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차 선생은 1919년 일제의 착취로 지역민들의 삶이 점점 피폐해져 분노가 점점 높아가는 때에 서울의 3·1만세운동의 소식을 접한 뒤 화성시 우정면 주곡리와 석포리 주민들의 선봉에 서서 만세 시위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차 선생은 또 군중들을 인솔해 우정면사무소, 화수주재소 등지에서 만세 시위를 계속 벌였고, 시위 과정에서 일본 순사가 쏜 총에 주민이 피살되자 군중들과 함께 도망가는 일본 순사 가와바다를 추격해 처단하고 면사무소를 파괴하기도 했다.차 선생은 이후 일제의 대대적인 검거로 시위 주모 혐의로 체포돼 소요 등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5년형을 언도받았다.

9년 2개월만에 출옥했지만 오랜 옥고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69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