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글쓴이는 '다큐프라임'에 출연했다. 프로그램 제목부터가 외래어이다. '프로그램'이라는 말도 외래어이다. 1부와 2부는 우리말 제목으로 방송되었지만 3부는 '스토리텔링'의 시대였다. 나 자신이 이런 외래어 환경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몹시 불편하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오랜만에 교육방송에 출연한다고 하니 "교육방송이요? 이비에스 아닙니까?"하고 되묻는다. 하긴 그렇다. 일반적으로 교육방송이라고 하지 않고 이비에스라고 한다. 하지만 이 방송사의 이름은 '한국교육방송공사'이다. 이비에스는 이 이름을 영어로 번역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한국교육방송공사 혹은 교육방송보다 이비에스를 더 많이 쓴다. 한국교육방송공사라는 긴 이름보다는 이비에스가 간편할지 모른다. 그러나 교육방송과 비교하면 큰 차이는 없다. 주객이 전도됐다.
이야기 3부작에서 글쓴이가 맡은 역할은 '프리젠터'였다. 프리젠터는 영어 'presenter'이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진행자'이기도 하고 어떤 주제에 대한 내용을 발표하는 '발표자'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가 프리젠테이션이란 말이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어느 새 프리젠터까지 우리말처럼 쓰게 된 모양이다. 하지만 프리젠터는 프리젠터이기 이전에 해설자이고 발표자이다.
글쓴이가 맡은 역할은 전체 내용을 해설하는 것이었고, 때때로 상황에 간섭하면서 직접 현장에 투입되어 극을 이끌거나 극의 진행을 돕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방송 대본에는 너무나도 익숙한 외래어들이 곳곳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낸다", "시리즈 드라마를 몰아서 보느라 코피를 흘리고 말았다는 회사원도 있습니다", "1년 중 200일 이상을 스토리 세미나로 보내고 있는 분이죠", "남편과 마리카는 극적으로 재회하고 해피 엔딩으로 막을 내립니다", "이야기는 애플 로고의 탄생에 관한 여러 가설 중 하나일 뿐입니다" 등등.
명색이 우리말글 운동을 한다는 사람이 이런 외래어들을 여과 없이 녹음하고 방송을 해야 하는 현실은 무척 곤혹스럽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가끔 외래어를 남용하지 말자는 글쓴이의 의견을 오해한 이들이 "당신 외래어 한마디도 쓰지 마"라는 댓글을 다는 현실을 상기할 때 이런 불편함은 더욱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무기력한 자신의 처지를 헤아려 달라는 하소연을 처량하게 늘어놓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글쓴이가 맡은 역할은 '프리젠터'였지만 방송이 나갈 때는 '해설'로 소개되었다. 1부 시작하자마자 등장한 '네티즌'은 '누리꾼'으로 슬쩍 바꾸어 해설했다. 우리말글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의 오죽잖은 몸부림에 불과하지만 우리말글을 조금이라도 살려 쓰고픈 글쓴이의 작은 소망의 실천이기도 하다. 다는 아닐지라도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것이 글쓴이의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