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젊은 청년 해군 104명을 태운 1천200t급 초계함이 58명의 해군만이 구출되고 46명의 해군이 실종되거나 사망한채…. 언론이 거의 도배하다시피 이 사고를 대서특필하고 특히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각자 느끼고, 분노하고, 흥분했으리라.
평택 함대 사령부에서 오열하는 가족들. 현 정권의 지도자들이 모여서 안보회의를 열고 현장을 방문하는 모습들…. 그들 중 군 복무조차 안 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시 부끄럽게 느끼지 않았을까?
1969년 석사학위를 마치고 군의관으로 입대하였다. 대구 근교 가창에 있는 50사단에 군사기초 훈련과 유격훈련을 받기 위해 완전군장을 하고 군용 트럭을 타고 도착하였다. 연병장에 도착하여 대형을 갖추고 난 후 선글라스를 쓴 장교가 훈시를 했다. "너희들은 지성인이고 의사이고 나이도 다른 신병들과 다르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군으로 동일하다. 따라서 훈련을 제대로 받고 따라오면 대한민국을 지키는 '진짜 사나이'가 되고 낙오하면 제군들의 인생은 끝이다"라고 하며 "알겠나?" "예!"한 답이 소리가 작다 하니 어느덧 연병장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네"하고 대답하면서 순간적으로 군대란 이렇게 간단하게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느꼈다. 간단없는 훈련 속에서 '의사'라는 직업도, 배웠다는 '지성인'이라는 생각도, 결혼한 남자라는 사실도 모두 잊게 되고 천진하고 말 잘 듣고 단순한 '내'가 되는 과정을, 나도 모르게 새로운 '나'로 변화되는 과정을 경험했다. '나폴레옹'이 불가능은 없다고 했는데 그 의미를 100%받아들이겠고 그가 군인이었기 때문에 이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됐다. 나 자신도 모르게 2~3주가 지나니 '단순'한 그저 시키는 대로 따라하고, 1분 휴식하라면 정말 즐겁고 배불리 먹고 잠 잘 자면 마냥 행복했다. 특히 유격훈련을 받을 때 '조교'들이 훈련상 어르고, 겁주고, 가끔 기합을 주고, 개망신을 줘도 누구하나 기분 나쁘다거나 대항하는 후보생(훈련생)도 없었고 단지 무아지경의 훈련만이 존재했다. 유격체조로 몸을 완전히 '녹초'로 만든 후 밧줄을 타고 활강하거나 도르래로 절벽과 절벽사이를 건너가는 등 막말로 죽기 살기의 훈련 때 항상 묻는 말이 있었다. '죽어도 좋습니까?'
훈련시 대오를 갖추고 부르는 군가! 목이 터져라 불렀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일도 많다만 너와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진짜 사나이'의 1 소절이다. 이럴 때는 정말 이 노랫말대로의 느낌이 있었고 전혀 토를 달지도 않았고 때로는 괜히 감동하여 눈물을 글썽이고 주먹을 불끈쥐고 큰소리로 자부심을 느끼며 '진짜 사나이'가 되곤 하였다.
수년 전 이스라엘을 여행한 적이 있다. '기관단총'같은 총을 메고 있는 이스라엘 군인들을 보았다. 잘생긴 청년들. 놀랍게도 정말 한창 멋 낼 나이의 20대 안팎의 여자 군인들…. 여행안내인이 "놀라셨죠. 여기는 모든 국민이 군대를 가야 합니다. 남자도 여자도 구별이 없습니다. 또한 군대를 갔다오지 않으면 국가의 녹을 먹는 공직에서는 적어도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말입니다. 막말로 정신병이든 신체결함이 있든 어떠한 조건에서라도 꼭 군대에 가지 않으면 소위 사람구실 노릇을 할 수 없습니다. 물론 개인 사업은 가능하겠지요." 덧붙여서 또 한번 놀라게 한다. "여자라도 군대 갔다 오지 않으면 시집갈 수 없습니다. 물론 남자는 더 말할 나위도 없고요."
이제는 국방의 의무를 한번쯤 되짚어 볼 때다. 여행가이드로부터 내가 들은'이스라엘'의 병역의 의무, 공직자의 윤리. 우리의 공직 사회도 무언가 병역의 의무에 관한한 이스라엘의 반쯤은 따라야 하지 않을까? 정치인들 국회의원들, 공직자들 뭐하고 계시오.
세월이 많이 지났다. 3년3개월 나의 군대생활은 내 인생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바꾸고 싶지 않은 최고의 추억이요 최고의 가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