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자식들의 가슴에 못을 박고 수십년 전 집을 나갔던 아빠는 뻔뻔스럽게도 어느날 갑자기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 대접을 받으려고 한다. 이에 엄마들은 기가 막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고, 자식들은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경제 위기와 여권 신장 등의 사회상을 반영해 드라마가 '고개 숙인 아버지'의 모습을 투영한 데 이어, 최근에는 '신(新) 모계사회'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머니의 파워를 보여주는 드라마가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이들 드라마에서 아버지는 수십 년간 소식도 모르고 지냈거나, 남보다 못한 사이였다가 늙어서야 뻔뻔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역할이다.
과연 엄마는 아빠를 용서할까.
◇아버지, 이보다 뻔뻔할 수 없다
철없고 무책임한 데다 허풍이 심한 하룡은 힘든 일은 피해가고 원하는 건 손에 넣고 마는 인물이다. 한마디로 구제불능의 캐릭터.
옥숙은 "죽어서도 내 앞에 오지마.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여길 어찌 기어들어와"라며 악을 쓴다.
심지어 제발로 찾아온 것도 아니고 알고보니 지금껏 살던 첩의 집에서 쫓겨난 것이었다. 시아버지는 다니던 경로당에서 과부와 눈이 맞은 게 들통났던 것이다.
시어머니는 아버지를 내쫓지 않으면 자신이 나가겠다며 짐을 싼다. "너희 아버지로부터 받은 수모와 그 모진 세월을 어찌 다 말하겠냐"며 가슴을 친다.
◇억척엄마, 아버지 없이 집안을 일으키다
지난 5일 시작한 KBS 2TV 아침극 '엄마도 예쁘다'는 남편 없이 홀로 식당을 운영하며 사 남매를 억척스럽게 키워낸 엄마 이순진(김자옥)의 이야기다.
남편의 부재는 이순진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식들을 어떻게 하면 잘 키울까 하는 생각에 여성성을 포기하고 열심히 살며, 사 남매를 잘 키워냈다.
그런데 그렇게 산 지 수십 년 만에 그의 앞에 첫사랑 홍규탁(김동현)이 나타나고, 드라마는 사라졌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엄마의 옛사랑 때문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순진의 자식 중 누군가가 홍규탁의 아이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볼수록 애교만점'에서는 옥숙이 '열혈 엄마' 소리를 들어가며 집 나간 남편 대신 지난 15년 동안 남부럽지 않게 딸 셋을 키워냈다. 당연히 이 집안의 대장은 옥숙이며 이 가정은 아마조네스와 다름없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시어머니가 동네 창피하게 만드는 남편의 여성편력을 묵묵히 참아내며 세 아들을 키워냈다. 남편만 빼면 이 집안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화목한 대가족이다. 시어머니의 권위는 서슬 퍼렇게 살아있고, 험한 세월을 견뎌낸 어머니에 대한 아들 셋의 효성이 깊다.
◇돌아온 탕아, 가족과 어떻게 화해할까
이들 돌아온 탕아들은 상식적으로는 모두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나 상식만으로, 계산으로만 따질 수 없는 것이 가족이기에 드라마는 이 탕아들이 어떻게 가족에게 용서를 받고 받아들여지는지를 그리게 된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구본근 SBS CP는 "돌아온 탕아를 돌팔매질해서 죽이면 이야기는 끝나버린다. 용서를 해줘야 이야기가 이어진다"면서 "늙고 병들고 이빨 빠진 호랑이가 돼서 돌아온 아버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가족이다. 이용가치로 사는 게 아니라 정으로 사는 게 가족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구 CP는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잘못한 자를 용서하고 받아들여주는 것이 인간의 기본 정서이며 그래야 사람 사는 세상 아니냐"면서 "잘못을 저지른 자가 용서받았을 때 가장 큰 감동이 전해진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인생은 아름다워'가 어떤 진행과정을 갖게 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구 CP는 "'청춘의 덫'이나 '내 남자의 여자' 등을 볼 때 김수현 작가가 잘못한 남자를 쉽게 용서하지 않았다"며 "우리 드라마 역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예측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볼수록 애교만점'의 사화경 PD는 "가족 시트콤이지만 이미 만들어진 가족이 아니라 새로 만들어가는 가족이 등장한다는 점이 특징"이라며, 15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가 가족이긴 하지만 진짜 가족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