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를 배경으로 세르비아의 작은 마을 우지체에서 하룻동안 일어나는 일을 다룬 '유랑극단 쇼팔로비치'는 전쟁의 와중에서도 공연을 하려는 극단 사람들과 전쟁통에 무슨 연극이냐며 맞서는 마을 사람들과의 갈등을 다룬다.
전쟁통에 연극을 하는 것에 대해 의아해하는 사람에게 유랑극단의 단장은 지금 빵 굽는 사람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그는 빵 굽는 사람은 당연히 빵가게에 있다고 대답한다. 약사는 어디 있느냐고 묻자 약사는 약국에 있다고 한다. 선생님은 어디 있느냐고 묻자 그야 물론 학교에 있다는 대답이다. 극단장은 아무리 전쟁통이라 해도 모두들 자기 일터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연극배우가 연극을 하는 것 또한 당연하지 않느냐 반문한다. 그러나 마을 사람은 먹고 사는 데 꼭 필요한 빵과 연극은 아무래도 다르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러자 배우들은 연극은 당장 빵을 먹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일 곧 사람이 왜 먹고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연극은 실로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객관화시켜 삶을 이해하도록 하고 때로는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게 하여 지적인 반성을 요구하기도 하며 가끔은 그 힘겨운 세상을 모두 잊게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삶과 연극은 명확한 경계가 있는 동시에 때로는 경계가 없는 하나의 세상이기도 하다.
동구권의 대표적 극작가였던 하벨은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반체제 인사로서 벨벳혁명을 이끈 국민적 영웅이었고 체코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과 2대 대통령을 지냈다. '리빙' 곧 '떠난다는 것'은 10년간의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 작가로서는 20년만에 발표한 신작이라는 점과 그의 정치 역정과 권력에 대한 회한이 담긴 자전적 작품이라는 점에서 2008년 초연 이후 유럽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받아왔다.
한국에 소개된 체코 작가로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알려진 밀란 쿤데라 정도가 전부인 한국 문화계에 하벨의 공연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변화와 추방, 세대간의 권력 이동을 다룬 고전인 셰익스피어의 '리어왕'과 체호프의 '벚꽃동산'을 주요 모티브로 차용한 이 작품은 최고 권력자였던 주인공이 권력을 이양하고 난 후 후임자에 의해 관저에서 추방되고 정치동지들이 떠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권력의 상실과 그로 인한 쓸쓸함을 보여준다. 권력의 정점에까지 갔던 작가가 권력 이후를 그려내면서 권력의 의미와 무의미, 그 카리스마와 허무에 관한 깊은 성찰의 결과를 보여준다.
빈 무대에서 무섭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죄 지은 것 이상으로 벌을 받는다"는 리어왕의 대사를 반복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홀로 남겨진 인간의 철저한 고독과 소외를 보여준다. 그 외로운 실존의 모습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그를 통해 언젠가는 저렇게 광야에서 철저한 고독 속에 서 있게 될 우리 자신을 보게 되는 까닭이다.
전쟁이든 체제의 억압이든 불평등한 사회든 사람들은 언제나 자유를 향한 요구를 가졌고 그것을 얻기 위한 투쟁을 해왔으며 마침내 역사라는 커다란 흐름을 만들어왔다. 이 작품들은 여전히 전쟁 같은 이 세상에서 빵이 아닌 한 편의 연극이 생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고 하나의 지향점을 제시해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마지막까지 자기가 있어야할 자리를 지키려 했던 유랑극단과 오랫동안 머물렀던 자리를 떠나는 전직 총리는 삶에 대한 용기와 신념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