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만희 프로필 
전 에듀TV 방송·프리먼트·사이저스 사탐 강사·정방학원·두원학원(분당)·서진학원 강사, 현 강남구청 인터넷 수능방송·KT정보에듀·비타에듀·애니스터디·청솔 학원(송파, 광주, 일산)·이투스(송파, 분당)·대성학원(목동)·필탑학원(평촌)·정보탄탄학원·한터학원·명문학원·하나TV(건국대학교 IPTV)·7와이즈(KT 캠퍼스 www.7wise.co.kr)·명인학원(대치동), 멘토스학원(대치동)


불교 윤리

석가모니가 입멸(入滅)한 후, 불교는 소승 불교와 대승 불교로 나뉘어져 발전했다. 소승 불교는 수행자 자신의 정신 세계에만 몰입하여 사회와는 분리된 엄격한 종교성과 개인의 해탈을 강조하였다. 반면 대승 불교는 중생과 함께 하는 대중 불교로 발전하였다.

 대승 불교는 반야경의 출현과 용수(龍樹)의 사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대승불교의 공(空)사상이란 자아의 아집으로부터 벗어나서 너와 나를 하나로 여기는 지혜를 얻기 위한 것이다. 세상이 공허하다는 허무주의가 아닌 욕망이나 아집(我執)과 같이 자아나 사물에 집착하는 오류를 지적하고자 출현한 사상이다. 중도(中道)사상은 우주의 본질과 현실의 양면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대승 불교에서는 공 사상을 통해서 무아(無我)를 철저히 인식해 이기심을 버리고 대중과 함께 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 중도 사상을 통해 현실이 진리와 떨어져 있지 않다고 전파하였다.

대승 불교의 보살이란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는 사람이다. 나보다 남을 위해 봉사하며 남의 해탈을 위해서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바라밀(波羅蜜)을 실천하는 불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바라밀이란 ‘저 언덕으로 간다’라는 뜻으로, 해탈을 상징하는 저쪽 언덕으로 가는 방법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대승 불교에서는 나에 대한 이기적인 집착을 버리는 공 사상을 철저히 깨닫고 실천하는 것을 중시하였다. ‘무주상보시’라는 말은 내가 내 것을 누구에게 주었다는 생각조차 버리는 일을 의미하는데,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의 대승 불교가 중국에 전파되어 기원후 6, 7세기경에는 교종과 선종이 성립되었다. 교종의 양대 종파인 화엄종과 천태종은 너와 나, 인간과 자연이 현실적으로 원만한 관계로 존재하고 있으며, 누구나 성불(成佛)할 수 있다는 사상을 담고 있다.

교종은 경전의 이해를 통하여 깨달음을 추구하는 이론 불교로, 뒤에서 설명하는 선종에 비해 사회 지도층 및 귀족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선종에서는 우리가 본래 하나이며, 완성된 부처라는 것을 직관(直觀)해야 한다는 돈오(頓悟)사상을 주장하였다. 즉, 부분적인 지식의 축적으로는 전체적인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고 보고, 이론이나 지식에만 집착하는 교종의 방법을 비판한 것이다. “달을 가리키는 데 달은 보지 않고 그 손가락만 보고 있다”라는 비유가 이를 보여준다. 선종은 당의 달마(達磨)와 혜능(慧能,)에 의해서 정립되어 그 후에 크게 발전하였다.

도가, 도교 윤리

한(漢)나라 초기에 유행한 황로 학파(黃老學派)는 중국 고대의 전설적인 임금인 황제(皇帝)와 함께 노자를 숭상하여 청정 무위를 주장했으며, 유가(儒家), 묵가(墨家), 명가(名家), 법가(法家) 등의 사상을 흡수하였다.

한나라 말기에 성립된 오두미교(五斗米敎)는 도교의 한 형태인데, 당시 정치적 혼란에 처해있던 백성들에게 종교적인 구원을 선전하면서 교단의 형태를 갖춘 종교로 발전하였다. 오두미교의 명칭은 가입하려는 사람에게 다섯 말의 쌀을 요구한 데서 유래되었다. 오두미교는 도덕적으로 선행을 하면 질병이 낫게 되고, 영원히 죽지 않는 신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권선징악적 성격을 가지기도 했다.

노장 사상을 철학적으로 계승해 발전시킨 것은 위진(魏晉)의 현학자(衒學者)들이었다. 그 중 대표자는 죽림칠현인데, 이들은 눈앞의 현실 세계는 다만 인간의 고정 관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고, 진실한 세계는 고정 관념을 초월한 무(無)의 세계라고 말했다. 이들은 소위 청담(淸談)이란 인간의 현실을 초월한 우주론적 최고 원리의 경지를 토론하는 논변을 즐겼으며, 세속적인 가치를 초월하고 철학적, 예술적 사유와 가치를 중시하였다.

노장 사상은 본래 인위적인 관념, 제도를 비판하고 반성하는 실천적 동기에서 출발하였으나 점차 신비주의나 사변 철학으로 변형되었고, 그 과정에서 쾌락주의나 공리주의에 가까운 성격을 지니기도 하였다. 또한 현실에 대한 직접적 참여보다는 방관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었고, 세속적 윤리의 실천보다는 개인의 생명이나 정신의 자유를 추구하려는 경향이 심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