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는 유명한 온천이 있다. 전국 제일의 온천수가 넉넉하게 솟아오르는 천혜의 명소, 바로 유성온천이다. 온천이 나오는 곳은 현재 행정구역상 온천 1동과 온천 2동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온천은 말 그대로 따뜻한 물이 나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온천이 발견된 것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으로 추측되지만 남아있는 기록이 없다. 다만, '동국여지승람'에 태조 이성계가 조선의 도읍지를 물색하기 위해 계룡산 신도안으로 가던 중에 이곳에서 쉬어갔다는 기록이 있고, 태종이 전라도 임실로 강무를 위해 행차하던 중 이곳에서 목욕을 했다고 하니 조선왕조가 시작될 무렵에는 임금이 쉬어갈 정도로 훌륭한 온천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유성온천은 지금도 전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온천으로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이렇듯 온천으로 유명한 유성은 본디 백제시대의 노사지현을 역사적 터전으로 했었다. 백제시대의 노사지는 '느슨하게 펼쳐진 지형에 자리한 성'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신라 경덕왕 16년(757년)에 유성으로 개명되었다. 백제의 멸망과 함께 노사지도 운명을 같이 한 것이다. 백제 멸망 후 노사지를 대신한 유성이란 지명도 이제 그 나이가 1천200살을 훌쩍 넘어섰다.
한밭이 대전이 된 것은 표기의 문제였다. 노사지가 유성이 된 것은 백제의 멸망이라는 역사적 사건에서 기인했다. 온천동은 따뜻한 샘물이 나옴으로써 붙여진 이름이므로 그 지역의 특성을 잘 드러내주는 지명이다. 이처럼 지명에는 유래와 사연과 역사가 있다. 조상의 숨결이 담겨있다. 지명이 그 지역에서 살았던 이들의 삶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명은 지금 그 땅에 살고 있는 이들의 삶도 반영한다.
최근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외래어가 포함된 동(행정동) 이름이 탄생했다. 지난 4월 21일 대전 유성구의회는 제164회 임시회 본회의를 열고 대전 유성구에 '관평테크노동'을 신설하도록 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찬성 5표, 반대 2표, 기권 1표였다. 유성구의회 의원들의 의견도 엇갈렸지만 주민들의 의견도 엇갈렸다.
현재 관평동, 탑립동, 용산동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대체로 역사성이 있는 관평동을 행정동 명칭으로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해 구즉동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관평동은 67%의 지지를 얻었었다. 본디 관평동은 마을 앞에 '관들'이 있어 관평동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유성구는 테크노아파트 주민들의 항의를 이유로 주민간담회 결과라며 '관평테크노'라는 동 명칭을 입법예고했던 것이다. 테크노아파트 주민들은 왜 '테크노'라는 이름을 쓰겠다고 했을까? 테크노라는 이름을 가진 아파트에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테크노라는 이름에 애정과 긍지를 갖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이런 것도 일종의 애향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유성구의회가 '관평테크노동'을 신설하도록 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고 해서 동명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 대전시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익명의 대전시 관계자는 '관평테크노동'이란 명칭에 법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국에는 공익을 현저히 해치는지 아닌지를 놓고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만에 하나 관평테크노동이라는 이름이 공익을 해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유사 이래 처음으로 외래어로 된 동 이름이 탄생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머지않아 줄줄이 땅콩처럼 글로벌동이나 프렌들리동, 아이티동, 바이오동, 하이브리드동 같은 이름도 등장할지 모른다. 과연 이런 이름들은 어떤 역사를 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