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전파 속도도 최상위급이다. 강화에서 내륙 깊숙한 곳까지 번지는데 걸린 시일이 단 2주다. 전파력이 소의 100~3천배에 이르는 돼지가 감염됐기 때문이다. 전염 속도에 비해 경로 파악은 더디다. 개인적 거래는 파악조차 어렵고, 방역 장비가 고장나는 등 방역 대책이 허술해 구제역이 어디까지 번질지 예단이 힘들다. 정부 수립후 구제역 사태가 발생한 것이 4번째고 그 중에서도 경계 경고가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구제역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더욱이 이번 감염이 가축뿐 아니라, 이동 경로 파악을 어렵게 하는 멧돼지·고라니·노루 등 발굽이 두 개인 우제류에 속하는 야생동물에 의해 퍼질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어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옮긴 사례가 발견되지 않아 확률을 점칠 수는 없지만, 개나 늑대 등이 구제역으로 죽은 동물의 뼈나 시체를 옮기면서 구제역을 전파한 일도 캐나다와 옛 소련 등에 있었고, 여우나 새 등이 유사한 방식으로 구제역을 옮기는 일도 가능하다는 것이 국립환경과학원의 설명이다. 경로 파악과 방역 성과에 따라 사태가 커질 수도 있고 고비를 넘겨 안정을 찾을 수도 있다.
악성 구제역은 치사율이 50%에 이르고 매몰하는 살(殺)처분이 유일한 예방 수단으로 돼있어 방역이 뚫려 전국으로 확산되면 축산 농가는 최악의 사태를 맞게 된다. 이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걱정스러운 점은 삶의 의욕을 상실해가고 있는 축산 농가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구제역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방역에 총력전을 벌여 확산을 방지하는 것이 우선돼야 하지만, 피해 농가에 대한 관심이 뒷전이어서는 축산업의 앞날이 어두울 수밖에 없다.
국가 정책이 모든 것을 살펴 헤아리지 못하면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방역망을 갖추는 일과 피해 농가를 살피는 일이 정부 정책으로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충분하지는 않아도 이들이 재기(再起)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부가 해야할 일이기 때문이다. 헌법에는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고 돼있다. 또한 보상의 기준으로 사회적 정당성을 들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게는 그 곤궁(困窮)을 보완해 주는 점에서 시가(時價)보다 많은 보상을 해줘야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물며 구제역은 방역에 실패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
정부는 '구제역 발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축산 농가의 신속한 지원과 매몰 처리된 가축의 시가 보상, 축산 농가 생활 안정을 위해 보상금의 50% 선 지급, 가축을 키우지 못하는 기간동안 생계안정자금 지원, 농가가 가축을 다시 입식하면 가축 시세의 100% 융자금 지원, 정책자금 상환 연기 및 학자금 지원'을 굳게 약속했다. 하지만 강화군에서 발생한 구제역으로 키우던 한우 수십마리를 살처분한 50대 여성 농민이 숨진채 발견됐다. 정성들여 키운 소가 매몰되는 것을 보며 1차 가슴앓이를 했을 것이고, 이후 생활터전이 폐허로 변하는 현실을 깨닫고 스스로 삶을 포기했다는 유추가 가능하다. 그동안 정부가 피해 농가에 지급한 보상금은 피해 규모의 3분의1도 안된다는 것이 농민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농민의 극단적인 선택은 재기할 수 없는 현실에 있다. 정부의 약속이 신속히 진행돼 재기할 수 있다는 확신이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방역 대책과 농가 구제는 병행해 충분하고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